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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01. 2023

변화하는 도시의 씨앗

1유로 프로젝트

사무실에 하나둘씩 화분이 늘어가며 식물을 가까이서 돌보게 됐다. 소리를 내지도 않고 눈앞에서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그대로 멈춰있던 것만 같던 식물은 때때로 나를 놀라게 했다. 없던 새잎이 불쑥 자라나기도 하고,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훌쩍 키가 커져있기도 했다. 특히 봄이 오면 맑은 연두색으로 자라나는 새 이파리들을 지켜보는 뿌듯함이 있었다. 내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식물들은 열렬히 자라고 또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가 변화하는 방식이 마치 식물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작은 변화들이 쌓여 어느새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는 점이 말이다.



여기, 아직은 낯선 이름의 동네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렇게나 가까운데 여태껏 그 존재를 모르고 지냈다. 성수동에서 북쪽, 중랑천에 맞닿아 있는 작은 동네. 이곳의 이름은 송정동이다.




3년 동안 오직 1유로


1유로 프로젝트의 이름과 개념은 유럽에서 시작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따왔다. 인구 감소로 방치되고 비어있는 건물을 정부가 민간에게 1유로에 빌려주고, 1유로를 내고 공간을 임대한 사람들은 리모델링을 통해서 공간을 개선하여 사용한다. 사람들이 드나들자, 멈춰있던 도시엔 다시금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도시가 재생되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와는 달리 송정동의 1유로 프로젝트는 민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착한 건물주를 찾는 일이 주요했다. 낙후된 동네로 인식되어 왔던 송정동의 잠재된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1유로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는 지역과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한 건물주는 3년 동안 오래된 주택을 상가로, 그것도 무료로 임대를 주기로 결정했다.




건물 안을 마치 골목을 걷듯



1유로 프로젝트는 코끼리 빌라라는 이름을 가졌던 붉은 벽돌의 공동주택을 상가로 리모델링하여 사용한다. 사용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에 1유로 프로젝트는 건물의 멋들어진 외관보다는 내부를 다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한다. 외관은 기존의 붉은 벽돌을 그대로 살리고, 오래된 창호를 교체하고 커다란 간판을 붙이며 깔끔하게 정리했다.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코끼리 빌라를 더 이상 집이 아닌 공간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1유로 프로젝트는 이전과는 다른 동선을 제안한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가장 낮은 부분부터 가장 높은 부분까지 한 번에 연결되는 계단과 달리, 1유로 프로젝트의 계단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있다. 한 번에 연결되지 않는 구분된 계단들은 자연스럽게 건물을 꼬불꼬불 돌아보도록 만든다. 때로는 계단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고개를 돌려 찾아봐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골목길을 돌아다닐 때의 모습과 닮아있다.



복도에 크게 열려있는 창으로 햇빛이 밝게 들어온다. 좁고 긴 복도지만, 큰 창이 열려 있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복도 끝에 있는 상점까지 원래는 한 세대씩 살고 있었을 공간에 빼꼼 고개를 내민다.




오래된 도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1유로 프로젝트에서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제로웨이스트 숍, 도심에서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1인 목욕탕, 다양한 소품을 만드는 가죽 공예 숍과 옥상을 마당처럼 가꾸고 있는 가드닝 숍 등 17개의 브랜드가 각자의 색을 가진 방에서 문을 열고 있어, 방문객들은 복도를 따라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작은 마을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인다. 멀리서 보면 작은 점과 같은 건물들이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가며 변화하다가, 어느덧 색이 달라진 여러 점들이 모이면 전체 그림의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길게 보면 송정동에게 1유로 프로젝트는 가장 먼저 색을 달리 한 하나의 씨앗일 것이다. 사람들을 모아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1유로 프로젝트는 언뜻 낙관적이고 순진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몇 년 뒤, 1유로 프로젝트라는 씨앗이 심긴 송정동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까.




샘터 2023년 11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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