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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Nov 30. 2023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그림으로 남기는 짧은 이야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서둘러 편의점에 들러 투명한 비닐우산을 하나 샀다. 투명하게 비치는 하늘로 검은색의 얇은 살이 호를 그리며 선을 긋는 비닐우산이 예쁘다. 태양이 내리쬐는 더운 날의 양산이 예쁜 색과 무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엔 하늘이 다 보이는 투명한 비닐우산을 좋아한다. 흐리고 흐린 날에 더더 투명한 비닐우산이 예쁘고 선명해 보인다.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으로 톡톡 하고 내는 소리들을 눈으로 보는 맛이 있다. 비는 이 비닐우산 덕에 선명해지고, 소리가 커진다.


내 물건이라면, 더구나 예쁘다고 생각된다면, 부주의로 부서지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오래 조심스럽게 쓰는 편이라, 편의점에서 파는 투명우산을 플라스틱 손잡이가 삵아서 자연스럽게 갈라져 조각나 부서질 때까지 비싼 우산처럼 아끼고 아껴 쓴다. 조금 더 비싸게 주고 산, 천으로 된 우산이 아무리 예쁜 색의 예쁜 무늬를 하고 있어도, 웬만한 비바람이 아니라면 편의점에서 6000원에 주고 산 이 투명우산을 주로 들고 다닌다.

마침 전에 산 핑크색손잡이를 한 비닐우산이 2년을 넘어서 3년이 되어 가 색이 날아가고 부서져버린 때이니, 갑자기 내린 비 덕분에 새로 장만하기 딱 좋은 날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 눈에 예쁜 투명비닐우산은 어쩌다가 잃어버려도 속 하나 상하지 않는 물건에 속한다. 아무래도 가격면이나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점이 비닐우산의 호에 대한 무게를 덜어주는 요소가 되겠으나, 어찌 댔든 아무리 예쁘고 아껴도 비닐우산은 그 정도 호의 가벼움을 지녔다.


우산을 쓰고 자리를 옮겼을 때,  노란 샤프연필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지하철에서 샤프연필로 책에 줄을 치면서 읽다가 서둘러 내리면서 책을 옆구리에 끼고 이동하는 동안 책 사이에 끼어 놓은 노란 샤프 연필이 빠진 모양이었다. 지하철부터 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다시 되돌아가면서 길을 살폈다. 아까 식사했던 식당에 들어가 노란 샤프를 못 보셨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말이다. 속이 조금은 상했다. 이 노란색 샤프펜슬은 편리하기도 하고 손에 익기도 해 근래 들어 잘 쓰고 있는 필기구다.-내 손에 맞는 괜찮은 필기구를 만날 때가 있다. 딱 내 손에 맞았는데……-

가는 길에 똑같은 것으로 사가야지.

하면서 마음을 접는다. 찾아봤는데 없으니까. 찾아는 본 것을 끝으로 속상함을 달랜다.

어쩔 수 없지.

노란 샤프연필은 딱 이만큼만 한 속상함이었다. 그래도 찾아보기까지는 하는.


—————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들은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마음 안에 들어차 있는 것 같다. 좋아서 아끼는 것들에, 좋아하는 일들에, 좋아하는 사람들에 무게를 가늠해 보자면, 좋아할수록 더 무겁고 크다는 걸 그런 상실감으로 느낀다. 너무나 아끼는 것을 잃어버리면 가슴이 시리다. 잃어버린 것의 무게가 사라진 만큼 휑하게 가슴이 시리고 슬프다.


우리는 그날 우리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그것을 지켜가기 위한 외로움과 고단함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마도 엄청 커다랗고 무겁게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좋아하는 이 일이 삵아서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잃어버려서 속상한 마음을 하고 다시 길을 배회하며 나왔던 길들을 다시 헤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런 상실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들로 그 무게를 더 크게 짐작하게 된 날이다.


모모씨 그리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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