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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May 23. 2024

<짐을 끄는 짐승들>

2024 낫저스트북클럽 6월의 책

이야기 하나. 

순돌이와 함께 산 7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반대로 슬프고 화가 나는 사건들도 많았어요. 여성이 혼자 개를 반려하면 공격의 대상이 쉽다는 것, 개를 고유한 특성을 가진 생명체로 보지 않고 생김새로 구분하고 싸잡아 차별하는 현실, 개가 인간에게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앞에서 뒤에서 혐오하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죠. 제가 겪은 일들은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주변의 반려인들은 물론 잊을만하면 SNS나 언론을 통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귀를 닫고 자기주장만 펼쳤고 정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여기저기 눈치보기 바빴죠. 


이야기 둘. 

지난가을 서점이 서울숲길로 돌아오게 되면서 순돌이와 저의 생활 터전도 함께 서점 쪽으로 옮겼어요. 지척에 서울숲을 두고 있으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서울숲 이곳저곳을 누비며 산책을 했어요. 동절기 내내 동네 사람들만 찾던 조용한 숲은 날씨가 조금 풀리자마자 몰리는 인파에 여기저기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나와 내 강아지가 매일 누리는 숲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어쩌다 한 번 관광지처럼 들린 사람들은 동네의 소중한 숲을 망가뜨렸어요. 쓰레기통을 곱절로 늘려도 모자라 아파트 단지에서나 볼법한 대형 쓰레기통이 등장했고, 그마저도 꽉 차서 쓰레기통 주변으로 배달음식통, 음식물 쓰레기, 테이크아웃 컵, 한 번 쓰고 버린 돗자리 등이 넘쳐났죠. 주말에나 하루 한 번 정도 정리하고 수거해 가던 것이 이제는 매일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분리와 정리, 수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야 하고 쓰레기통 근처 땅엔 알 수 없는 액체가 스며 쾌적해야 할 공원에 쓰레기장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쓰레기통 주변만 그러면 다행이게요, 발길 닿는 곳곳마다 쓰레기가 없는 곳이 없고, 음식물을 함부로 바닥에 버리니 반려견들이 먹거나 쉽게 닦이지 않는 물질을 밟는 등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고요. 사람이 보호하며 산책하는 반려동물도 그러한데 숲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수많은 동물들은 어떠할까요.


이야기 셋. 

동물권, 장애, 인권, 인류사회학 등 넓은 영역에 걸쳐 많이 언급되는 책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고 이전에 트래시 맥밀런 코텀의 <시크>를 읽었던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동물권과 사회적 차별문제는 평소 관심이 많던 주제라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수나우라 테일러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지식체계에 상당한 균열이 일었죠. 깊이 알고 싶어서 관련 책을 여러 권 더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장애를 가진 직업인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휠체어를 탄 학교 선생님, 지팡이를 짚는 의사, 눈이 안 보이는 직장 동료나 귀가 안 들리는 주민센터 직원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번 있었더라고요. 서점에서 커피를 팔아달라는 손님들의 요청에 휴게음식점 등록을 하러 구청에 갔던 날, 필요한 서류가 있어 민원실이 아닌 상층부 유관부서를 찾았는데 귀여운 레트리버 한 마리가 저를 반겨주는 게 아니겠어요? 우와 성동구청은 반려견 동반이 되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담당 공무원 곁에 앉아 서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자리가 조금 달라 보였어요. 바로 알아채지는 못하고 뭔가 이상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하고 한참 앉아있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 책상엔 컴퓨터 본체와 키보드, 마우스는 있는데 모니터가 없었거든요. 그제야 본체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바쁘게 자판을 두드리던 자리 주인이 눈에 들어왔어요. 덩치 큰 개가 낯선 사람이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다가서자 다급히 말리던 사람이었는데 어쩐지 낮은 자세로 케어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개가 흥분하지 않도록 그러려니 했는데 아이를 보는 대신 만지면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가 이 일을 겪은 게 서른다섯이던 해였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장애인과 어떤 업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건 모니터가 없는 책상을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더 이상한 일이었어요. 분명 무언가가 잘못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았죠.


수나우라 테일러를 비롯해 저보다 앞서 위와 비슷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온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 중심주의 - 휴머니즘이니 인본주의니 하며 좋은 것이라 떠받들어온, 사실은 ‘정상 백인 이성애자 남성 중심주의' - 라는 왜곡된 신념이었죠. 우리 사회에는 이성애자 남성만 살지 않고,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문자로 적어내는 것조차 민망하네요.) 하지만 우리는, 심지어 기후활동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그레타 툰베리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매 순간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나의 행동이 사회와 환경과 지구와 우주에 미칠 영향을 곱씹어 고민하고 실행하는 인간이 얼마나 있겠어요? 인간이기에 그렇고, 어쩌면 당연해서 간과하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가지고 더 알아보려 애쓰는 것, 쓰레기통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보았다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노력을 기울여보는 것, 바닥에 아무렇게나 음식물을 쏟아버리기 전에 맨발로 땅을 누비는 동물들을 생각해 보는 것,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차별과 배제의 결과임을 아는 것, 그런 행동들이 모여 세상은 일보 전진 이보 후퇴하며 그나마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수만 년 동안 해내지 못했던 진보를 약 5세기 동안의 매우 짧은 기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 “무지의 발견”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보았는데 이렇대, 누가 그러는데 아니래, 쉽게 듣고 가볍게 전하기 전에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보기를. 내가 알던, 살던 세상이 사실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보기를. 그리하여 알게 된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6월의 책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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