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은솔 Jul 31. 2024

<비바레리뇽 고원>

2024 낫저스트북클럽 8월의 책

유튜브에서 뭐 보세요? 


저는 주로 토크쇼를 보는데요, 요즘엔 한 음악가가 자신의 집에 유명인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는 채널을 즐겨 봅니다. 얼마 전, 이 채널에 새로 올라온 동영상을 즐겁게 시청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업계 최고의 실력과 평판을 자랑하는 세 사람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시며 유쾌하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호스트가 게스트의 그릇에 수프를 나누는 때였습니다. 그날의 드레스코드에 따라 잠옷을 입고 있던 게스트들은 호스트에게 수프 접시를 내밀며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 같지 않냐며 농을 던졌습니다. 귀를 의심하던 순간, 다윗의 별까지 언급하며 하하호호 웃는 세 사람을 보고 이게 현실인가 싶었습니다. 업계에서 존망 받는 위치의 사람들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보는 영상에서 홀로코스트를 농담거리로 삼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방송하기로 한 제작진의 결정, 혹은 무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싶어 영상을 잠깐 멈추고 서둘러 댓글을 확인했습니다. 공개된 지 두어 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는데, 댓글은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어쩌면 저처럼 깜짝 놀라거나 불편함을 느꼈을 시청자는 댓글을 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수십 개의 댓글 중 농이 지나쳤다 지적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팬의 입장에서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서구권에서 홀로코스트를 우스갯소리로 삼는 것이 얼마나 터부시되는지 아는 한 사람으로서 타인의 고통에 고유함을 부여하지 못하는 무심한 사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 외국의 유명인이 유튜브에서 한국의 일제 시절 위안부나 서대문형무소를 언급했다면 어땠을까요.


처음엔 스펙트럼의 문제를 이야기해보려 했습니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처럼, 그 끝에 다다르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가까운 과거에 경험한 우리는 어떤 문제들은 아무리 적은 정도일지언정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며, 경계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를 직접 겪은 사람이 아직 살아있고 후대에도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서구의 도시들에서는 어떤 나라의 사람들을 인종적으로 특징짓거나 스테레오타이핑 하는 것조차도 불편해합니다. 가벼운 프레이밍이 혐오로 변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매우 짧고, 그렇게 변하는 사람이 특별히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어쩌면 따뜻했던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더 생각해 보니 이 역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더라고요. 타인의 경험을 고유화하지 못하고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경험에만 비추어 짧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거기서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참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삶과 동떨어진 일이라도 타인의 인생이라는 길고 깊은 스펙트럼 속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오늘의 이 순간에 오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한발 물러나 들여다보는 것.


타인의 삶을, 고통을 고유화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야 하는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무슨 일이든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일’입니다. 남의 일은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고, 나의 깊은 고통이 타인에게는 그저 한낱 가십으로 소비되기도 합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늘 같은 결론입니다만,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좋은 책을 읽어야만 합니다.


한 달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비슷한 맥락의 다른 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요, <비바레리뇽 고원>과 함께 8월의 책 최종 후보로 마지막 순간까지 경합을 벌였던 책이 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양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를 다니엘 트로크메라는 한 인간의 고유한 삶으로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이야기를 현대 난민 문제로까지 연결하는 것이 고민의 주제와 조금 더 부합하는 것 같아 <비바레리뇽 고원>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후보였던 <쫓겨난 사람들>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좋은 어른이 되어요, 우리.


“비록 괴롭긴 하지만, 어쩌면 본인이 직접 느끼는 고통은 세계 최악은 아닐지 모른다. 세계 최악은 다른 영혼에게 고통을 안기는 것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8월의 책

매기 팩슨의 <비바레리뇽 고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