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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Nov 21. 2022

<프래니와 주이>

2022 낫저스트북클럽 12월의 책

영국 북부 작은 도시 뉴캐슬에서 유학을 할 때의 일입니다. 대학에서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서 뉴욕에서 하던 어학연수를 마치고 유럽으로 여행을 온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영국은 원래 런던만 들릴 예정이었지만 저를 위해 며칠을 더 내어 런던에서 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뉴캐슬로 오겠다는 거였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제 몸만 한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일 년 넘게 타지에서 생활을 하다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가도 이 짐을 끌어 대체 석 달 동안 유럽을 어떻게 누비고 다닐지 궁금하더군요. 친구도 답을 못하고, 우리는 도시 관광을 제쳐두고 짐 솎아내기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옷은 상하의 한 벌씩만 남기고 다 버리고 뉴욕과 유럽을 다니며 모아 온 기념품들은 한국으로 부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도 트렁크의 무게는 크게 줄지 않아 무얼 버려야 하나 고심하던 찰나 옷가지와 잡동사니 아래 가득 들어찬 책이 보였습니다. 친구는 책은 못 버리겠다며 망설이다가 몇 권은 한국으로 보내고, 몇 권을 가지고 다니기로 하고, 그리고 한 권은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 뉴욕의 유명한 헌책방 스트란드 외부 매대에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골라 2달러를 주고 산 <프래니와 주이>는 친구와 함께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영국으로, 뉴캐슬에 있는 저의 작은 기숙사 방으로 날아왔습니다.


책을 받았지만 읽어볼 생각은 못하고 수개월이 지나 저도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 전 유럽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짐을 버리고 단출하게 꾸린 트렁크 안에 <프래니와 주이>가 있었습니다. 빈에서 지내던 어느 날, 더 이상 읽을거리가 없어진 저는 그제야 이 작은 책에 눈길을 줍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페이지들 안에 그린 프래니와 주이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한 가지 명확했던 사실은 제가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이후로 지금까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종교적인 소설로 읽힐 수 있는 <프래니와 주이>는 ‘신' 대신에 ‘삶'을 써넣어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습니다. 혹은 삶 대신에 내가 고민하는 무언가, 향해가는 어떤 지향점을 대체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2년 12월의 책

J. D.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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