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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Feb 09. 2021

한낱 잡덕이 보는 아이돌 시장 2. ‘금손’의 등장

인터넷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덕질하기

 주말에 늦게 일어나면, 가끔 TV로 음악 방송을 본다. 1위를 거머쥔 아이돌의 수상 소감에서 항상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 멘트는 뻔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으로 무려 유느님도 예외가 아니다. 예능 방송은 시청자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 시대로 인해 가수들은 '관객 없는' 무대를 1년 동안 경험했다. <놀면 뭐하니?> 의 환불원정대가 관객 있는 무대에서 공연할 때의 감동은 무대에서 관객의 의미를 되새긴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연극의 4요소를 배웠었다. 연극은 시, 소설과 달리 관객을 필요로 한다. 연극 뿐 아니라 무대는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 메시지다. 관객 없는 무대란 '받는 사람을 특정하지 않은 채, 쓰기만 하고 우체통에 넣지 않은 편지'다. 또한 관객의 호응은 공연 무대에 힘을 주고, 더욱 좋은 공연으로 돌아온다. 무대는 공연자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호흡하며 같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시장에서의 '팬'은 무대에서의 '관객'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금손'이라 불리는 2차 창작자들 덕분이다. 1부에서 이야기했듯이, 팬들은 아이돌의 '세계관'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세계관'을 즐기는 팬은 소비자와 관객을 뛰어넘어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금손’들은 아이돌, 기획사, 방송사 등이 만든 1차 자료를 차용해서 컨텐츠를 만든다. ‘금손’들은 아이돌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지만, 여지껏 없던 새로운 컨텐츠를 재구성한다. 모든 포토카드를 수집하는 소비가 있는 한편, 자기 손으로 새로운 포토카드를 만드는 ‘2차 창작'이 있다.


마인크래프트 속 규칙을 깊이 숙지한 플레이어는 게임을 수동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게임의 새로운 면을 개발자 마냥 만든다.


 아이돌, 기획사, 방송사 등이 만든 1차 자료가 있는 한편, 해당 1차 자료를 재구성해서 ‘금손’들은 2차 자료를 만든다. 한때 2차 창작은 아이돌 시장의 암시장 같았다(20여 년 전 대표적 2차 창작인 팬픽이 그랬다). 저작권 등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알려져 있지만, 합법적이고 보이는 세계와 서로 상호 작용하며 서로 필요로 한다. 2차 창작은 ‘금손’들의 유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돌을 알리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된다. 아이돌의 공식 자료가 아닌 2차 자료로 알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 영향력이 커졌다. 어째서 공식 자료보다 비공식 자료인 2차 자료의 힘이 더 클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의 정보환경 자체가 옛날과 다른 “인터넷” 세계이기 때문이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는 엑소 팬의 SNS로 역주행한 사례로, 2차 자료의 영향력이 1차 자료의 그것을 초월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은 우리 일상에 너무 가까워서 그 특성을 자주 잊곤 한다. 인터넷의 핵심은 정보의 양이 아니다, 그런 거라면 도서관도 정보의 보고다. 도서관과 인터넷의 차이는 정보의 ‘우선순위’다. 도서관은 도서의 체계가 분류되어 있다. 그 체계는 고정되어 있다. 화산을 다룬 책은 지구과학 책장에 있고, 지구과학 책장은 과학 자료실에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고정된, 수직적 체계가 없다. 그저 정보와 정보가 서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는 클릭하면서 정보와 정보, 페이지와 페이지를 뛰어넘는다. 주제와 주제 사이의 위계가 없다. 언제든지 그 위계는 역전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도서관이 정보의 산이고,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산기슭이 정상이 될 순 없지만, 파도는 부서져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듯 정보의 위계가 없이 단지 연결되어 있을 뿐인 상황을 “하이퍼텍스트”라고 부른다. 아날로그식으로는 이렇게 정리할 수가 없다. 인간 머리의 저장 용량은 정보들이 위계와 중심 주제로 요약되어야 버틸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의 대표적 사례는 싸이월드의 파도타기다. 지금이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누르다가 다음 다음 다음... 페이지로 계속 넘어가면서 시간이 어느 순간 증발하는 것이 “하이퍼텍스트”의 위험한 매력이다.


"하이퍼텍스트"는 바로 다음 책장을 넘기지 않고, 클릭으로 점프하는 비선형적 텍스트다.


 사실 인터넷을 ‘바다’라고 비유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바다의 수심처럼 정보의 깊이가 없다.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심층과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흑막이나 배후가 되는 정보는 없다. 모든 정보는 단지 인터넷 세계에 둥둥 떠 있다. 인터넷은 모두 표층이다. 인터넷 세계의 특징은 본질을 “원천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책 속의 위계는 사라져 모든 정보가 동등하게 취급되는 세상이 인터넷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은 1차 자료와 2차 자료를 구분하지 않는다. 기획사가 만들었다고 그 권위를 인정해 값을 더 쳐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들과 연결되어 있는가’다. 인터넷에서는 2차 자료도 1차 자료를 압도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중심이 있는 나무 모델과 달리, 얼키설키 뒤엉킨 고구마 줄기같은 리좀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인터넷의 정보 체계와 매우 유사하다.


 지금 아이돌 시장의 2차 창작은 팬픽 같은 텍스트보다 대체로 동영상이다. 2차 창작을 구분하자면, 편집 영상, 뮤비 해석 영상, 리액션 영상, 커버 영상, 직캠 영상 등이다. 2차 창작 혹은 파생 영상들은 1차 자료의 수를 훨씬 웃돈다. 그 저변에는 모든 팬들에게 아이돌의 정보를 접속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환경과 편집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적 환경 이외에도 심리적 이유 또한 존재한다.


 ‘금손’들의 2차 창작은 문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놀이’의 개념과 일치한다. ‘놀이’는 “재미”를 추구하는 행위다. 그럼 “재미”는 무엇인가? “재미”는 ‘낯설게 하기’에서 나온다. '낯설게 하기'를 말한 극작가 브레히트는 연극을 익숙한 현실이 사실 익숙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는 걸 알리는 메신저라고 보았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것. 아이들이 청소하는 빗자루를 마법 빗자루로 만들어 타고 날아가는 것. 재미는 그렇게 창출된다. '낯설게 하기'는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으로 변환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낯설게 하기'는 창조가 아니라 편집이다. ‘놀이’는 “낯설게 하기”고, 편집이다. 2차 창작이 재구성이자 편집이라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의 ‘놀이’에 가장 적합한 예시라 볼 수 있다. 


 또 하나, ‘놀이’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놀이’는 일과 달리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놀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감정과 재미를 주고받는 “정서 공유”의 과정이다. ‘놀이’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전제하는 ‘의사소통’이다. 2차 창작자 ‘금손’들은 마치 점조직처럼 각자의 채널을 통해 아이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낚시 동호회에서 놓친 물고기로 이야기하는 아저씨들과 브이라이브를 10분 내외로 깔끔하게 편집하는 '금손'들의 심리학적 기제는 똑같다. 


 이제 2차 창작은 그 영향력에서 마냥 2차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 1차와 2차는 역전되기 시작한다. 1차와 2차의 역전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1차가 2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기획사 등이 2차 창작으로 ‘재구성’되기 위해 1차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브이라이브나 공식 유튜브 영상들은 단지 영상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2차 창작’의 재료가 되어 더 많이 인터넷에 유통되고자 하기 위한 복안이다. 어느 시점부터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 상징 체계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1차 자료인 뮤직비디오는 팬들의 해석(2차 창작)을 요구하는 퍼즐로 만들어진다. ‘금손’들은 분명 자발적으로 만드는 2차 창작이지만, 기획사들은 웃음 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치 않은 행운이 아니다, 2차 창작을 계산에 안 넣는 기획사는 지금 한국에 없다.


1차와 2차가 역전되는 그 시작점은 개인적으로 엑소(EXO)라고 본다. SM 엔터테인먼트는 개인적 선호를 떠나 수완좋은 기획사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1차 자료가 있고, 2차가 파생되는 것이 아니다. 2차 창작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1차 자료들은 노력한다. 인터넷에 흘러들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금손’들이야말로 아이돌 시장의 가장 적극적이고 중요한 플레이어다. 아이돌 시장은 주어진 것을 소비하는 행동을 넘어서, 다시 잇는 적극적인 ‘놀이’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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