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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Feb 04. 2021

한낱 잡덕이 보는 아이돌 시장 1. 그룹의 시대

이야기를 소비하는 동물, 인간

 이 글은 오래 전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10여 년 전 당시, 가요계는 아이돌 그룹의 시대였다. "새로운 솔로 가수들이 그룹에 비해 왜 가요계의 중심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 걸까?" 아이유의 등장 이후 이 질문은 더욱 커져 갔다. 시간이 오래 지났고, 그 사이에 솔로 가수들도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등장한 아이돌 그룹의 수를 생각하면, 10여 년 전을 그룹의 시대라 부른 게 무색할 정도다. 그리고 그 솔로 가수들도 대부분 그룹에서 나왔다(대표적으로 선미, 백예린, 청하가 그렇다). 지금의 가수지망생들에게 '솔로 가수'라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 봐야 한다(그대가 힙합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룹을 거치지 않고, 솔로가수로 정점에 오른 아이유는 더욱 희귀한 케이스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룹이 더 잘 나가니까. 그룹이 더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수가 많아서 비즈니스 모델로서 안전하니까? 그것도 맞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룹은 솔로 가수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다는 것은 대중에게 인상이 각인되어야 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가수들의 인생사나 가십들과 함께, 가수의 컨텐츠를 즐기며 감정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그 가수를 '아이콘'으로 선택한다. 사실 여기서 단어만 바꾸면, 이 과정은 모든 나라의 대통령 선거전략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인기'와 '지지'가 동력이라는 점에서 연예인과 정치인은 비슷하다(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둘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잣대를 혼동하는 듯하다). 


틸다 스윈튼은 2013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자기 자신을 전시했다. 연예인은 일하는 곳이 공적 장소일 뿐, 정치인은 국민의 권리를 통해 탄생한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드는 방식이 한국 연예계에 새롭게 등장했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오디션으로서 경쟁이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지원자들의 사연이 가미된다. 이 두 가지가 섞이며, 시청자는 심사위원이면서도 지지자가 된다. 지원자의 인생사와 노래를 동시에, 주기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원자에게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써 아이콘을 만든다.


엠넷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한중일 걸그룹 프로젝트 <걸스플래닛 999>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힘을 솔로 가수가 아닌 아이돌 그룹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발상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연습생(지원자)들은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자신들의 팬덤을 구축한다. 그러니까 그룹이 데뷔하고 홍보를 하고 팬덤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팬덤을 만들고 나서 그룹이 데뷔하는 순서의 역전이 일어난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 홍보 방식인가? 거기에 방송 출연까지? 대체 어느 기획사가 이 전략을 마다할까? 


SM 루키즈 또한 '데뷔 이전의 팬' 전략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들과 SM 팬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팬덤 형성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룹에게는 앞서 말한 인생사와 다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케미'다. 멤버들 사이의 관계성이다. 멤버와 멤버 사이의 친밀한 모습을 보며 상상 속에서 멤버들을 엮으면서 흐뭇해 하는 그런 시선 말이다. 이것은 솔로 가수가 가질 수 없는 합(合)이며,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다. 


 멤버 수가 많으면, 가능한 '케미'의 수가 많아진다. 각각의 '케미'를 지지하는 팬들 사이에서 선의의(때로는 자기파괴적인) 경쟁이 일어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화제가 된다. 방송 출연, 팬싸인회, 콘서트 정도로 아이돌을 만났던 과거와 달리, 유튜브와 브이라이브 등 접속할 수 있는 방식이 늘면서 '케미'를 상상할 수 있는 자료가 늘어난 것이 현재 아이돌 문화의 큰 변화다. 


  팬들은 아이돌에게서 음악 뿐 아니라 '이야기'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팬들은 아이돌이 구축한 세계관을 소비하고 즐긴다. 만약 음악만을 즐긴다면,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듣고 유튜브에서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이 팬클럽 활동의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팬들은 합법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아이돌에게 접속하려 한다. 음악 방송에 응원하고, 앨범과 시즌그리팅을 사고, 콘서트 티켓팅을 하고, 팬싸인회에 참여하고, 본방사수를 하는 등 한낱 잡덕이 아는 것이 이 정도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할까.


과연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있을까?


 팬클럽 활동은 매우 특수한 동기가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이야기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너무 이해되는 행동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즐긴다. 어린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 매일 읽는 신문 기사부터 그리스 신화, 셰익스피어 비극, 장자, 뉴턴 물리학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해석하고자 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립하려는 일은 인간이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계관'으로 자리잡는다. '세계관' 속에서 인간은 안정감을 느낀다.


복잡한 세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아이돌 그룹의 앨범 속에 포토 카드라는 게 있다. 멤버들의 자그마한 사진인데, 모든 멤버가 아닌 일부 멤버들의 사진만 랜덤으로 들었다. 열성 팬들은 같은 앨범을 수십 장 사면서, 모든 멤버의 포토 카드를 수집한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완결된 '세계관'을 갖고 싶어하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돌 시장은 "수집"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다음 이야기는 2부에서... 어쩌다 보니 브런치 최초로 시리즈물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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