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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jay Dec 23. 2022

3. '자기가축화'에 관한 생각

리딩소사이어티 11기: 브라이언 헤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뭔가 제목부터가 따뜻하고 마음을 끄는 책이었고 책소개나 목차를 읽으면서는 이러한 관점이 그저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과연 저자의 설명대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았고 이후에도 번성할 것인가.


책에서 '다정하다'는 말을 다르게는 '친화력'이란 단어로로 표현되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이러한 집단내 친화력은,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는 차별화될 만큼 소통에서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른바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타인, 즉 비친족과도 정서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언어 능력을 통해 100명 이상의 타인과도 어렵지 않게 광범위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친화적으로 교류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 중 하나는 '자기가축화'이다. 개가 인간에 의해 가축화되어 늑대보다 더 번성하게 되었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가축화하여서 더 사납고 힘센 다른 동물들보다 더 번성하게 되었다는 입장이며, 이런 저자의 입장이 옳다면 인간이 번성한 것은 그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가축화'라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나는 사주상 '상관'이 있어서(ㅋㅋ) 종종 조직에 쓴소리를 하거나 운동가적 기질을 발휘할 때가 많았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나아가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며 스스로 생각하고는 부단히 조직 내부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비판적 입장을 고수했던 나를, 공동체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로 보고 어느 시점에는 제압하려 하거나 나아가 조직에서 잘라내려고 했다. 교회나 선교단체에서도 그랬고,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반복됐다. 


처음 제지가 들어왔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겨 원래의 스탠스대로 행동했지만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나중엔 조직에서 내치려 하거나 스스로 나가게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데 생각해보면 고심 끝에 결국 조직 안에 남겠다는 선택을 한 후로는, 나도 적절히 나의 비판적 입장이나 모난 행동을 다듬어야 했는데 그것은 흡사 늑대의 야생성을 버리고 인간과 공생하기 위해 인간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멈추고 친화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 개의 생존법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쓰다듬으면 물지 않고 손을 핥고 배를 드러내고 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먹고, 그들이 좋아하는 행동에 머물러야 한다.


가축화나 친화력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조직에 위협적인 위치에 서지 않고 지속가능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스스로 온순하고 양보하는 배려심을 갖는 것을 말하며 이는 사회가 바라는 페르소나를 자신의 유전자로 취하고 그들이 펼치는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암묵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문화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이며, '다정하다'라고 쓰고는 '말 잘 듣는다'라고 읽는 것이다. 팩트로 설명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언제든 구성원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종국엔 그 불안함이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개인들은 무리 지어 생활할 수 없다. '독고다이', '개x 마이웨이'는 집단생활에서 벗어난 노마드 지향일 뿐, 소규모라도 구성된 집단 안에 머무르고자 할 때는 백기를 들고 스스로 가축화를 선언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류의 친화적 성향은 크게 두 가지의 부작용을 가져다줬는데 1)외부인에 대한 적대성과 비인간화, 그리고 2)정서적 불안함이 그것이다. 1)은 과거의 양차 대전과 같은 전쟁과 최근 일어나는 정치적 대립 사례로 설명하는 편인데 나는 그보다는 2)에 더 관심이 갔다. 다정하다는 것은 외부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다는 의미이다. 즉, 감정 노동에 의한 정서적 취약함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또다시 한병철 선생이 제기한 '피로사회'의 문제로 회귀(후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욱 다정함을 보이는 것에 희망을 두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감이 된다. 타자화시켰던 외부인과의 잦은 접촉이 그들을 더 큰 '우리들 안'으로 포섭하는 길이며 sns나 첨단 기술, 교통수단, 국가주의의 쇠퇴가 이러한 관점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아남은 다정한 인간들은 유토피아에 사는 것일까, 디스토피아에 사는 것일까. 

오히려 야생성을 유지한 인간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입장의 인간을 헐뜯고 공격하고 위해를 가하는 환경이, 모난 곳 없는 조직의 보수성을 무너뜨리고 종국엔 인간의 물리적 번성을 위협하더라도 자기가축화로부터 구원받는 길인 셈인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도서 링크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8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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