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동안 세 식구가 열 평이 안 되는 원룸 오피스텔에서 네 달 동안 살았다. 살고 있던 전셋집 만기가 되어 나와야 했는데, 새 집 입주 시까지 네 달이 남았기 때문에 집 근처 원룸 오피스텔을 구했다. 아이 학교가 아니었다면 집 짓는 현장 근처로 옮겨 현장을 자주 오가고 동네에 미리 적응하는 기간을 가져도 좋았을 텐데, 아이가 학년이 바뀌는 2월에 이사해 전학하기로 계획을 했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했다. 전셋집에 월세를 내고서라도 네 달 더 살 수 있을까 문의드려 봤지만, 집주인분 아들 가족이 들어오기로 정해져 있어서 연장이 불가능했다. 덕분에 전세보증금을 빼서 시공사에 대금을 지불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다.
새 집 입주 전에 이사를 한 번 더 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오피스텔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사업체 알아보기, 짐 정리하고 처분하기, 이사에 따른 인터넷, 도시가스, 정수기 재설치 등 집 짓기와 동시에 해야 할 일 홍수가 찾아오니 한계에 부딪칠 때가 많았다. 집 짓기는 다양한 한계상황들을 밀도 있게 하나하나 통과해 가는 장애물 넘기 같은 거였다. 그러면서 나는 단련되었을까, 쇠약해졌을까?
새로 구한 오피스텔은 10평이 안 되는 원룸이었다. 우리 살림 중 큰 가구와 가전, 당장 필요 하지는 않는 짐이 들어갈 여유가 없어 처음에는 창고에 임시 보관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분할 것은 처분하니 남은 짐을 오피스텔로 다 가져올 수 있었는데, 지난 몇 년간 미니멀라이프에 심취해서 꾸준히 짐을 줄여왔고, 결혼 후 10년 넘게 써온 가전과 가구가 낡고 고장 나 몇몇을 처분했더니 창고를 빌릴 필요가 없어졌다.
오피스텔로 이사 가는 날 재활용센터와 폐가전수거업체 차량이 와서 가구와 가전 등 큰 짐들을 내갔다. 결혼 14년 차, 네 번째 이사였는데 최초로 2.5톤 탑차 트럭 한 대로 이사를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큰 가전이 없었고, 미니멀 라이프하면서 짐을 줄인 덕도 있었다. 2.5톤 트럭에 실릴 짐이라면 직접 포장할 수 있지 않을까, 꽤나 짐을 줄였다고 자만했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포장이사를 부탁했다. 혼자 포장하기에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짐들과 함께임을 확인했기 때문에 미니멀라이프는 아직 멀었다는 결론만 얻었다.
오피스텔 원룸에서 산 네 달간은 10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로, 겨울이었다. 여름 용품이나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추억의 물건 등은 박스에 넣어서 한쪽 벽에 쌓아놓고 지냈다. 꼭 필요한 것 들, 가령 주방용품, 세탁과 청소용품, 컴퓨터, 아이책과 장난감, 겨울 신발과 옷만 내놓았다. 오피스텔 네 벽 중 한 벽에 당장 쓰지 않는 짐 박스를 쌓아두고 남겨둔 짐을 몇 개의 가구에 수납해 벽에 붙여놓고, 가운데 세 식구가 잘 공간에 이불을 펴니 방이 꽉 차버렸다.
네 달간 10평 남짓 되는 원룸 오피스텔에서 세 식구가 복닥거리며 산 것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빌트인 되어있던 냉장고가 너무 작았는데 마침 겨울인 덕분에 창가에 과일이나 반찬을 보관했던 일, 좁은 공간에 옷이며 이불이 뒤엉켜있다 보니 먼지가 쌓이는 속도가 남달라서 청소를 자주 해야 했던 일, 주방도 작고 냉장고도 작아서 안 그래도 즐겨하지 않던 요리를 더 안 하게 되어 외식을 자주 해 살이 쪘던 일, 방이 작으니 어쩐지 TV가 주인공이 돼버려서 TV를 예전보다 자주 봤던 일. 그간의 일상에 변화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전부터 하던 대로 매주 첼로 선생님을 모셔서 레슨도 받고 손님까지 초대할 정도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 원룸에서 네 달 살다가 새 집으로 입주하니 궁궐 같아 어리둥절하며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기억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