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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짓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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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06. 2023

집 짓는 동안 내가 보냈던 어느 하루

기록의 쓸모

집짓기 봇으로서 내가 보냈던 어느 하루는 이랬다. 


우선 노트를 펴서 오늘 업체들과 확인해야 할 사항을 적는다. 이 노트는 집 짓기를 시작하면서 마련한 A4크기 빨간색 표지의 스프링노트이다. 여기에 일정, 확인해야 할 사항, 알아본 내용, 일기 등을 적고 집 도면이나 가구 도면 등 그림도 그렸다. 


노트에 적은 목록을 가지고 현장소장님과 카톡 또는 전화로 연락한다. 이 날은 잠시 중단되었던 내장 목공이 재개되었기 때문에, 합판으로 벽을 보강할 부분을 도면에 색연필로 표시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선반과 벽걸이 TV, 수납장 등이 달릴 벽은 석고보드만으로 지탱하기 힘들기 때문에 합판으로 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계하면서 미리 정해두었기 때문에 도면에 이미 표시되어 있었지만, 추가할 곳이 생겨 다시 한번 현장소장님과 확인 절차를 거쳤다. 


콘센트 위치도 도면에 다시 체크했다. 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부분 중 아직도 수정이 안 된 부분과 추가 또는 삭제할 부분을 더해 표시하고 사진을 찍어 현장 소장님께 보냈다. 조명도 확인했다. 설계 시 계획했던 부분 중 몇 군데를 수정하고 싶었다. 1층 욕실 거울 위에 갤러리 등, 즉 그림 액자 바로 위에 설치해 그림을 비추는 조명을 달아 거울을 비추려고 했는데 그걸 없애고 천장에 3.5인치 매립등으로 바꾸는 식으로 보다 심플한 분위기로 조명을 바꿨다. 조명 스위치도 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부분이 있어서 수정 요청을 했다.


건축사무소에는 메일로 내가 고른 각 실의 타일 사진을 보내 어떤지 물었다. 당구장 조명에 대해 현장소장님이 T5 매립이 어렵다 한 내용을 사무소에 전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물었다. 건축사무소와는 주로 메일과 전화로 연락을 했다. 확인하고 싶은 사항을 메일에 정리해서 보내면 사무소에서 그걸 보고 답메일이나 전화를 해 협의를 하는 식으로 소통했다. 현장소장님과는 카톡이나 전화로 소통했는데, 건축사무소분들은 주로 책상에서 일을 하니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는 메일로, 현자소장님은 현장에서 일을 하니 모바일이 주요 소통 창구가 되었나 보다. 사소한 거지만 재미있다.   


가구업체를 섭외하여 도면작업 중이다. 제작가구가 들어갈 곳은 주방과 안방 드레스 룸, 욕실과 세탁실이다. 주방가구가 가구 규모가 가장 크고 그다음이 드레스룸인데, 드레스룸 수납공간을 계획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짐의 부피를 대략적으로 측정해 보았다. 사계절 옷, 이불 등 침구류, 수영복 등 드레스룸에 수납할 양을 가늠해 본 후에 수납공간을 대충 그려봤다. 그 그림을 가구 업체에 메일로 보내서 가구제작에 참고하시도록 했다. 


CCTV 업체도 알아보는 중인데 한 업체에 견적방문을 요청해 날짜를 잡았다. 현관에 놓을 벤치 등 새 집에 놓을 가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며 한숨 돌렸다. 


이 모든 일을 매일 한건 아니다. 그러나 거의 매일 꼭 한 일이 있었는데 집짓기 관련 경과와 상황을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기록해 올린 것이다. 추후에 잘 정리해서 포스팅을 해서 예비 건축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고, 책으로 엮어 오매불망 소원하는 작가의 길에 한 발 들어서게 되면 더욱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록의 쓸모는 불안감을 잠재우는 용도로서였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은 불안한데 의욕도 힘도 없을 때, 아주 미미한 기력을 끌어올려 기록이라도 하면 무언가 했다는 성취감이 생겼다. 그렇게 쌓인 지난 기록을 들춰 보다 보면, 공사하는 동안 매일 뭔가를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그저 게으르게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현장방문이 너무 싫어 자꾸 회피하면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부지런히 했던 일까지 폄하하곤 했는데, 기록을 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여기까지 무사히 잘 왔구나 안도감도 들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곤 했던 거다. 


집 짓기에 대해 기술적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매일 현장에 나가는 식으로 파이팅 넘치는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집 짓기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쌓아온 기록 덕분이다. 노트나 블로그에 있었던 일과 해야 할 일을 쓰면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풀고 내일을 다시 계획할 수 있다. 기록을 하면서 정리가 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집 짓기에 대해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보다 잘해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 집 짓는 분들 매일 조금이라도 메모하고 다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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