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든 칼럼니스트든 글밥 먹고 살고 싶어요
아침마다 매일 한 편씩 필사한다. 필사는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잘쓴 글 한편을 베껴쓰면서 나는 머리 속을 헝클어트린 수 많은 생각을 떨쳐버린다. 그리곤 그 잘쓴 글을 쓴 작가가 되어 마치 내 글을 쓰는 양 신나서 옮겨 적는다. 이렇게 술술 써내려간 적이 없기에 더욱 신이 난다. 어쩜 이런 문장을 썼을까 감탄도 하고, 내가 써본 적 없는 단어를 발견할 때면 토끼눈이 되어 따로 메모해둔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싶단 소망이 생겨난 후 만들어진 습관이다.
필사를 하다 보니 내가 필사하고픈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어렴풋이 구분된다. 아마도 내가 쓰고 싶은 스타일의 글과 그렇지 않는 글일 것이다. 남의 것을 따라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취향을 알게 된다.
잠시 잘쓴 글의 저자가 되어 신나게 쓰다가 이제 내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이 도래하면 현란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그대로 멈춰버린다. 그 때부터 자책의 시간이다. 난 왜 이렇게 못쓰는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답답함이 하늘을 찌르고 땅굴을 파고 기어들어간다. 내가 쓰는 표현은 모두 진부해 보이고 내가 쓰는 단어들은 모두 상투적인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연습은 필요하다. 표절이 아니라 따라 쓰기 연습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이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기 위한 연습. 내 글은 아직 너무도 뭉뚝하고 한편으론 너무 날카로워서 함부로 휘두를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따라 쓴다. 따라 쓰는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더 많이 따라쓰고 싶고, 더 많이 얻어가고 싶다.
지난 주 한수희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요즘 그녀의 글 스타일에 푹 빠져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단정하고 유머러스하고 리듬감있고 가독성있게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글은 분명 엄청나게 고민하고 여러번의 퇴고로 다듬어진 글일 것이라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한 큐에 쓱 써내려간 글' 같다. 글을 마무리하는 스킬은 어떤가? 뒷 이야기가 더 이어질 것 같은 순간에 멈추는 담대함. 나에겐 없는 그 능력이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끝맺음을 맺어야 하는지. 그래서 부끄럽지만 손을 들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지극히 예상되는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답을 주었다.
연.습.
본인 또한 그런 스킬을 갖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었다고 했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를 보며 감탄하고 닮기 위해 많이 따라 써보았고 비슷하게 써보려 했다고 말했다. 역시 쉽게 써내려간 글은 없음을. 퇴고 없이 한 번에 다듬어진 글이 나올 수 없음을, 쉬운 문장이라고 해서 쉽게 쓰여지지 않음을, 그 모든 것은 역시 연습이 바탕에 있음을 그녀는 내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난 신나게 따라 쓴다.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