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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Feb 04. 2020

한 손엔 늘 커피가 있었다

에필로그


불안했던 지난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 잔은 말없이 날 포근히 안으며 위로해주는 오랜 친구였다.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 창밖을 바라보는 테이블에 앉아 김이 폴폴 올라오는 갓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세상은 고요해졌고 시간은 멈춘 듯했다. 어른으로서, 회사원으로서, 집안의 맏딸로서 작은 내 두 어깨에 얹힌 책임감이 버거워 잠시라도 잊고 싶을 때, 잠깐 동안이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고민, 내 미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었다. 그 공간에 머물던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커피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게 수시로 청소년이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며, 입에 대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린 내가 마실 수 있는 커피라곤 서울 우유에서 나온 커피 맛 우유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안 된다고 하셨으니 나와 카페인은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다. 성적이 전부였던 나는 커피를 마시면 멍청해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똑똑한 엘리트 여성을 꿈꿨기에 돌머리가 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지만 TV 속에서 엿본 대학생 언니 오빠들은 커피를 즐겨마셨다.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마시지 말라 하니 궁금했고, 금단의 그것을 쿨하게 마시고 있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다. 커피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래서 가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흉내 내고 싶을 때면 엄마 몰래 캔커피를 사 마셨다. 입구를 똑 하고 따서 첫 모금을 마셨다. 목구멍으로 들어온 차디찬 달콤 쌉싸름한 액체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정신을 번쩍 뜨게 만든 어른의 맛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나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출발한 고속버스를 바라보며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는데 나는 아마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나의 스무 살. 드디어 고대하던 대학생,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 때문인지 버스 안에서 잠도 안 왔다(지금은 출발하자마자 곯아떨어지지만). 학교 교정에는 강의실을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저마다 왼손엔 교재를 오른손에 종이컵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뚜껑에 작게 난 구멍 밖으로 처음 보는 아주 가느다란 플라스틱 빨대 하나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커피였다. ‘여기 대학생들은 캔커피가 아니라 종이컵에 담아 마시는구나...’ 앳된 얼굴에 어딘지 서툴러 보이는 옷차림의 나는 누가 보아도 신입생이었지만 신입생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선배들이 마시는 종이컵에 담긴 그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학교 매점에서 팔았던 한 팩에 800원짜리 자뎅 커피는 4년간의 대학시절 동안 단짝이 되어주었다.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던 날에도, 공부하기 싫은 날에도, 친구들과 공강시간에 수다 떨던 날에도 한 손에는 늘 자뎅이 있었다. 평소엔 프렌치 바닐라 라테를, 꿀꿀할 땐 카페모카나 마키아토를, 특별하고 싶을 땐 그린 티 라테를 골랐다. 달콤한 커피의 맛에 기대 방황하고 고달팠던 대학생활을 버텼다.


대학을 졸업하고 끝이 있을까 걱정했던 취준의 긴 터널을 지나 취업에 성공하고, 사회의 무서움에 크게 데이고,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지난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늘 커피를 찾았다. 한 모금에서 행복을, 또 한 모금에서 기쁨을 마셨다. 한 살씩 나이가 들면서 지난 기억들이 하루씩 잊혀지는 기분이다. 커피와 함께였던 그 소소하고도 행복하던 기억들을 잊고 싶지 않기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이곳에 남기려 한다. 나의 작은 추억들이 다른 이에게도 따뜻함을 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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