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방법
올해 봄, 태어나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다.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겁쟁이인 나만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아직도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두 다리가 성성한 이십 대까지는 어떤 거리든 걸어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걷기 싫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되고,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돈을 조금 더 보태 택시를 타면 그만이었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운동 신경 한 스푼 넣는 것을 빠트린 게 분명하다고 믿는 나는 몸 쓰는 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구석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데, 잘 못 하니까 재미있지도 않고 싫어하게 됐다. 그래서 자전거처럼 몸을 쓰는 것들은 배우고 싶지 않았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안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오래되면 썩는다. 내 주장을 합리화해주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 내면서 '안 배우고 싶다'가 '안 배워도 된다'는 고집으로 바뀐다. 날이 뜨거워서, 날이 추워서,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사람이 많아서, 나에게 맞는 자전거가 없어서, 자전거 살 돈이 없어서 등등 마음만 먹으면 이유는 백 개 넘게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제일 잘 설득하는 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겁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전거가 배우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다. 그렇지만 무서움이 배우고 싶은 마음을 압도했다. 자전거는 원래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면서 배우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운동 신경도 없으면서 한 번에 완벽 마스터하고 싶었다. 처음 타는데도 비틀거리지도 않고 코너링도 잘하고 무엇보다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넘어지는 건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주변에 누구라도 있다면 속으로 비웃을 게 분명했다. 이 나이 먹도록 자전거도 못 타는 어떤 아줌마가 아파트 단지에서 연습하다가 고꾸라지는 모습을 동네 꼬마들이 본다면 틀림없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자전거에 통달해 온갖 묘기를 부리는 초딩들이 내 옆으로 다가와 피식 웃으며 '아줌마, 내가 한 수 알려줄까요?'라고 말을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창피한 건 마찬가지다.
배우고는 싶은데 대낮에 하기엔 창피하니까 아무도 없는 깜깜한 새벽이나 밤에 연습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잠이 많은 인간이라 아홉 시만 되면 눈꺼풀이 반쯤 내려오고 에너지가 0에 수렴한다. 한참 사경을 헤매는 새벽에는 알람을 10개를 맞춰놔도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설사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처음 배울 때 누군가 자전거 뒤를 잡아줘야 할 텐데, 새벽 6시 50분에 광역버스를 타야 하는 남편이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삼십 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재미없이 똑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아줌마가 된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유튜브를 보고 있던 나는 알고리즘을 타고 뉴욕에 사는 어떤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만나게 되었다.
뉴욕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다. 나는 정적인 시골보다 늘 역동적이고 활기찬 도시가 좋다. 뉴욕에는 구경할 거리도 새로운 맛집도 많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쉴 수 있는 공원이 많다는 게 제일 좋다. 센트럴파크, 브라이언트 파크, 허드슨강까지 맨해튼에서 조금만 걸으면 언제든지 빌딩 옆에 숨어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여하튼 그 브이로그에서 유튜버가 자전거를 타고 허드슨강을 따라 산책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노을이 지는 오후였기에 햇살이 노란 황금빛이었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신혼여행으로 뉴욕에 갔을 때 영상 속 그 길을 남편과 손잡고 걸어 다녔다. 분명 같은 길인데... 분명 아는 길인데...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속도감을 영상으로 간접 경험한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기분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카타르시스이기도 했지만, '나는 못해'라는 생각 때문에 놓쳐버린 수많은 '경험'과 '기쁨'에 대한 후회이기도 했다.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새로움이 없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는데, 그 원인이 여기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이를 탓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핑계대면서 포기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나를 독려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나 자신이 갖은 핑계를 만들어내면서 나를 못하게 막아섰다.
나는 스스로 만든 제약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하지 못할 것이고 많이 넘어질 것이라고 계속 되뇌었다. 운동 신경이 없으니까 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기까지 남들보다 두 배 이상 걸릴 거라고,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주문 외우듯 스스로 말을 걸었다. 넘어지더라도 '것 봐, 못 할 거라고 내가 말했지?'라고 비난하지 말기로, 창피해서 '다신 안 해'라고 마음먹지 말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여동생이 휴가를 썼다고 하길래 동생한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동생 집 앞에는 고맙게도 따릉이가 있었다. 동생은 어쩐 일로 이 언니가 자전거를 직접 배우겠다고 말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땀에 절어도 되는 티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따릉이를 한 시간 빌리고 안장에 앉아야 하는 순간이 오자 다시 또 덜컥 겁이 났다. 포기하려면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한다. 한번 넘어진 후에 포기하면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할까?', '넘어져서 얼굴이나 무릎에 상처 나면 어떡하지', '동생이 잡아주느라 힘들 텐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등등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무서움은 분명 아주 작은 불씨 같았는데 내가 장작을 마구 집어넣자 점점 거센 불길로 커지고 있었다.
이럴 때 제일 좋은 건 일단 시작하는 거다. 안장에 앉자마자 냅다 페달을 밟았다. 그래서 온통 중심 잡는 데에만 신경이 쏠리도록 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잠시 섰다. 그리고 불안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고 바로 페달을 다시 밟았다. 골목길에는 유치원에서 하교하는 꼬마와 학부모들, 쓰레기를 버리러 집 앞에 나온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흘긋흘긋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창피함으로 도망가고 싶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사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집중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사람들도 나를 한 번 쳐다봤을 뿐 각자 갈 길을 갔다는 사실이었다. 걱정과 달리 나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큰 착각 하나가 깨졌다.
점점 자전거로 이동하는 거리가 멀어지자 동생의 얼굴에 땀이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걷다 서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동생도 뛰기 시작한 것이다. 1초, 2초, 3초, 5초. 혼자 페달을 밟고 중심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짧은 순간에 얼굴을 스쳐 간 바람의 촉감이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기분을 느끼려고 자전거를 타는구나, 나는 그동안 이 행복을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살짝 울컥했다. 동생에게 혼자서 타보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했다. 혼자서 짧은 거리를 탈 수 있게 되자 조금 더 욕심이 났다. 혼자서 1분, 3분, 5분 타다 보니 어느새 나는 '혼자서 자전거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1시간의 짧은 자전거 수업이 끝났다.
생각만 해도 겁이 났던 자전거가 그날 이후로 더는 무섭지 않아 졌다. 집 앞에서 연습하다가 세게 넘어지긴 했지만 무릎만 회복한다면 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갈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기 전에는 세게 넘어져 크게 다치거나 사고 날까 봐 무서운 마음뿐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완전히 새로운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감정은 앞으로 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두려움을 뚫고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나는 겁 많은 아줌마에서 용감한 아줌마로 바뀌고 있다. 늘 똑같고 노잼이던 삶에서 다채로운 경험과 재미로 가득 채우는 삶이 될 것이다. '어제의 나'와 달리 '오늘의 나'는 실수와 실패가 경험이고 자산이라고 믿는다.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을 이해한다.
평생 숙원 사업이던 자전거를 배웠으니 이제 다음에는 뭘 배울까 생각해본다. 운전? 수영?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운전을 배워서 기분 울적한 날에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근교로 드라이브 가는 나를 상상해본다. 수영을 배워서 호캉스를 가면 룸에만 머무는 대신 호텔 수영장에서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수영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상상만 해도 또 다른 내가 된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오늘 또 한 뼘 더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