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조그마한 회사의 커뮤니티에 쏟았다. MP3 플레이어를 제조하는 회사였는데, 팬층이 아주 두터워서 회사 웹사이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실명으로 활동하는 웹사이트였다.
내 존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다. 유저들은 물론 회사 관계자들도 나를 알정도였으니 그 당시의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커뮤니티지만 활동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 허지웅을 만났다.
블랙 사바스의 오지 오스본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닉도 ozzyz 를 사용했던 허지웅은 지금도 이 닉을 사용하고 있다. 이메일도 ozzyz 이고 예전의 이글루스 블로그도 ozzyz 였고, 지금 블로그도 ozzyz 를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지 오스본을 잘 알지 못하여, 어떤 부분에서 허지웅의 관심을 끌어들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당시의 허지웅을 아는 사람이라면 매번 어지 어스본~ 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번쯤은 기억할 것 같다.
지금도 참 거칠어 보이지만, 그 당시의 허지웅은 더 거칠었다. 말도 직설적이었고, 글 쓰는 게 좋아서 나중에도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했던 게 많이 기억난다. 근데 실제로도 글을 쓰고 있으니, 어느 정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기억으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명동 근처의 고시원(정확하게는 독서실?) 같은 곳에서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개인 사정을 많이 이야기하는 녀석이 아니라서, 참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뒷바라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자친구를 모임에 한번 데리고 왔었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커뮤니티로 연결된 인연의 끈이 얇아졌지만, 그래도 간간이 소식은 들었다. 영화 평론을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도 알고 있었고, 영화 잡지사에 기자로 입사하여 호러, 공포 영화들을 소개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그 잡지는 대중적인 주간지였는데, 무명의 기자가 대중적이지 않은 호러, 공포 영화들을 소개하는 게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후로 한번인가 두번인가 잡지사를 옮긴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삶이 바쁘다 보니 어느 순간 허지웅에 대한 소식은 자연스레 끊어지게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그다음에 허지웅에 대한 소식을 접한 건, 다름 아닌 TV 에서였다.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허지웅의 직설적인 성격과 말투는 "저 자식은 뭔데?" 라는 궁금증에서 점점 "사람 괜찮은 것 같다." 로 변하고 있었다. 아는 동생이 TV에 나온다는 경험이 참 새로웠다. 그리고, 괜히 뿌듯했다. 나름 유명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유 없이 뿌듯했다.
그 후로 공중파에도 나오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것 같았다. 심지어 허지웅이 나 혼자 산다에서 괴물샤워기라고 사용하던 제품도 샀다. TV 나 영화의 온갖 PPL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던 내가 허지웅이 들고 나온 샤워기는 그날 저녁에 바로 주문을 하다니, 참 놀랄 일이었다. TV에서 나오는 허지웅을 보면서, 그동안 모르던 모습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사이도 알게 되었고, 그 헌신하던 여자친구와는 결혼했지만 이혼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친동생이 있다는 것 도 알게 되었다.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기억 속의 허지웅은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고 본다. 근데 성욕 부분은 조금 의외였다. 난 허지웅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성적 판타지를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그마저도 시들었으려나?
그렇게 잘 나가던 허지웅이 어느날 갑자기 방송에서 하나하나 하차를 했다. 새로운 프로를 준비하는 것 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악성림프종, 즉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왜 하필 이 시기에 투병생활이라니.. 심지어 정말 홀로 외로이 투병생활을 하는 게 더 가슴 아팠다.
아는 동생들은 우리 중에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라며, 단체로 병문안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가지 못했다. 연락도 안되었고, 허지웅이 그걸 원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잘되기만을 바랬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완치되어서 다시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맨 처음 만났을 때 거칠지만 정이 있는 녀석이다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무언가 아픔이 있다는 것 도 느꼈다. 허지웅의 이미지는 할말 안할말 다하면서 편하게 사는 녀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때와 동일하게 말을 참 아끼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 시원하게 털어버리면 좋으련만 꽁꽁 싸매고 있어서 병이 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겉보기와 다르게 참 여린 녀석인 것 같다. 유명해져서 부러웠는데, 반대로 그 유명세가 부담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 생활하려면 보이는 이미지처럼 거칠고 강해져야 할텐데, 천성이 좋은 녀석이라 앞으로도 상처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맘고생 몸고생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아프지 말고, 좋은 활동을 꾸준히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허지웅이 유명해질 때마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유명해지면, 허지웅도 날 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하지 않을까?
허지웅, 너 임마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