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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Feb 20. 2024

마리아의 수태고지


피카소 특별전을 보러 시카고 미술관에 갔으나, 학교 휴일이라 어마어마한 수의 아이들이 미술관을 점령해서 비교적 아이들이 적은 중세/르네상스 관으로 갔다. 아마 전에 보았을 텐데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어둡고 긴 회랑의 한쪽 끝에 마리아 수태고지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을 찬찬히 보던 나는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천사에게 눈길이 간다. 불룩하게 나온 가슴이 마치 천사가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심지어 그 천사의 배도 임신한 듯 불룩하다. (배꼽까지 튀어나와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분명 성별이 없었을 텐데도 가브리엘이라는 남성형의 이름으로 인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남성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상상 속 수태고지 장면은 무언가 딱딱하고, 일방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어린 마리아가 느꼈을 혼란과, 그 소식을 일방적으로 전했을 (남성형) 천사에 대한 상상으로 말이다. 낯선 성인 남자가 난데없이 찾아와서는 10개월 후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 열서너살 소녀를 상상해보면 그 공포가 이해되지 않을까.

그러나 만약 천사가 마리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심지어 임신한 모습이었더라면, 소식을 받아들이는 마리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녀들은 짧은 시간에 깊은 유대를 형성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했을 난데없는 임신 소식은 임신한 여성 천사의 모습을 통해  마치 엘리사벳의 임신 모습을 보는 듯이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마리아의 또래인 듯 어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 그림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수태고지를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장면으로 이해했음을 깨달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에서 실재의 수태고지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는, 따뜻하고, 깊고, 아늑하고, 이해가 바탕이 된 연대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I went to the Chicago Art Institute to see the Picasso special exhibit, but it was a school holiday and a huge number of kids took over the museum. So after a brief visit to the Picasso exhibit,  I went to the Medieval/Renaissance wing, which had fewer kids. 


At one end of a dark, long corridor that I've probably seen before but don't remember much about, hangs a painting of the Annunciation. As I admired the painting, my eyes were drawn to the angel who has come to bring Mary the news. The bulging breasts seem to say that the angel is a woman, and even the angel's belly bulges (with the belly button popping up!). The angel Gabriel, the bearer of good news, is obviously genderless, but because of the masculine form of the name Gabriel (versus Gabriella), I subconsciously see the angel as a man. That's why my imagined annunciation scene is cold, one-sided, and even frightening. I imagine the confusion young Mary must have felt, and the (masculine) angel who delivered the news apathetically. 


But if the angel had looked like Mary, and even been pregnant, I wonder how Mary would have felt as she received the news. They would have formed a deep bond in a short time, and the news of her pregnancy, which could have been violent, would have been comforted by the sight of a pregnant female angel, as if she were looking at Elizabeth's pregnancy. The angel in this painting even looks young, as if she were Mary's age. Looking at this painting, I realized that I had understood the Annunciation to be a violent and one-sided scene, and I wondered if the actual Annunciation in God's presence might not have been so. In reality, maybe it was a warm, deep, empathetic, understanding tim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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