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세요? 저는 했습니다. 자랑이지만 좋습니다. 뭐 아직은 무럭무럭 사랑이 자라나는 신혼이니깐요. 아내라는 말이 아직은 부끄럽지만, 뭐 일단 아내랑 저는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다른 사람이 연애하는 게 그렇게 궁금하나 봅니다. 수요일 밤이면 다른 사람들이 결혼하려고 하는 TV 프로그램 구애의 몸짓을 보며 어머어머 추임새를 넣습니다.
결혼이 참 인기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30대의 절반은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포기했다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하철 광고에서는 성혼커플이 20,000명을 넘었으니 당신도 결혼을 원한다면 결정사 마담뚜에게 문의해라, 라는 내용이 아주 밝은 커플들 사진 위로 박혀있습니다. 마담뚜가 소개해주는 분들은 대체 어떤 분들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적당히 잘생기고, 직업 괜찮고, 키도 크고 그렇다고 너무 뚱뚱하지도 않으며, 집안도 화목하고 부모님 노후 준비도 그럭저럭 된 경제관념이 있고성격이 자상한 결혼 상대자는 거의 멸종위기종처럼 보기 힘듭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꿈꾸던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 속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생활을 만드는 것. 결혼의 가장 중요한 첫 질문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답변들 같습니다. 사실 결혼생활 속에서 바라는 건 특별한 몇순간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일 텐데 말이죠. 같이 장 보러 산책 갈때 달이 기운형태를 이야기할 때, 밥을 먹으려고 반찬으로 김치를 통에서 꺼내며 얼마큼 먹을지 양을 정할 때, 잠자기전 물을 한잔 나눠마시며 잘 자라고 인사할때. 뭐 그럴 때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원에서 찍었던 사진입니다. 춘향이와 몽룡이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을 꿈꾸지 않을까요? 물론 이들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해피엔딩인지 모르지만요.
그래도 사랑한다면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만 맞는 말입니다.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말 또한 어느 정도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식을 올리고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살려면 또 돈이 아예 없으면 안 될것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돈을 잘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니 그래도 결혼식을 올릴 돈은 모아지더군요. 집은 사실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모은 돈을 가지고 네이버 부동산을 열어봤습니다.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확인하고, 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이란 게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뼈를 때립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거의 순살이된 손을 움직여 아내에게 카톡을 보냅니다.
이제 우리 어떡하지?
아무래도 돈에 대한 건 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돈보다는 결혼은 어떤 모습의 사랑이랑 하는 게 좋을지부터 고민해봅니다. 이왕 할 거면 잘생기고 성격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상상합니다. 얼굴은 웃을때 이쁘고, 군더더기 없는 내 손을 잡아주는 하얀 손,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 즐거운듯 반달로 그려지는 눈빛까지 있으면 좋겠네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게된다. 결혼은 자상한 사람과 하거라. 아차, 나는 자상한 사람인가부터 반문하게 되는 말입니다. 일단 아내는 침대에 누운 채 물 한잔 떠달라고 할때 잰걸음으로 냉장고에서 한대접 떠다 주니 참 자상하다라고도 생각되지만, 옷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네 옷은 네가 직접 옷장에 걸어 넣으라며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자상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돈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직업은 괜찮은듯합니다. 오랜 시간 주기적으로 돈을 받습니다. 물론 작고 귀여운 월급을 고작 한달에 한번 만나는 걸로는 두 명이 한달을 살면 남기는 돈이 있을까 반문해봅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나의 수입만으로 아내와 아이에게 맛있는 걸 사줄 수 있을까 의문스럽습니다. 빵과 커피를 좋아하는데 직접 만들어먹으면 조금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떤 광고가 눈에들어옵니다. 광고에서 남편은 철없게 소고기로 몸보신하자고 아내를 조릅니다. 아내는 철없는 남편이 못 미더워 그렇게 돈을 쓰다간 언제 집 옮기고 아이 낳고 살 건지 소리를 지릅니다. 풀 죽은 남편에게 아내는 마지못해 못 보던 맥주 있으면 한 캔 가져와 보라고 합니다. 남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맥주를 카트가 다 넘치게 담아와서 아내한테 등짝을 양손으로 맞고 끝이 납니다. 쓰고나 보니 제가 장보는 상황과 흡사합니다. 절약을 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은 어쩌면 저한테 있나 돌이켜 보며, 어떻게든 돈을 잘 아껴보자라고 다짐하며 끝내 해결은 내지 못합니다.
외모는 참 어렵습니다. 각자 취향이 다른 주제이니만큼 제 얼굴에게만 선을 긋겠습니다. 거울을 봅니다. 이게 누구야 참 잘 자라왔구나 라는 생각이라도 들으면 참 좋겠군요. 일단 눈과 코와 입은 있습니다. 참 이빨은 많이 썩었으니 입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것 같기도 합니다. 나란 사람 참 이렇게 생겼구나, 저렇게 생기면 좋았을걸 상상해보지만 이내 30여 년 봐왔던 정이 있어 그런대로 봐줄만한 것같습니다. 부모님얼굴이 살짝 겹쳐 보입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 겹쳐 보이는 게 예전 부모님의 결혼식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던 나이에 이제는 내가 다다랐구나 싶습니다. 부모님은 그때 그얼굴로 그렇게 밝게웃으시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렇게 개구리 같은 아들을 만나게 될걸 아셨을까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며 외모에 대해서도 그만 말하기로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결혼해서 살고싶네요. 그냥 생각나서 넣어봤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일단 둘이 한다는 전제로 이야기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고작 그정도인 나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도(물론 귀여운 월급도) 그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결혼 참 할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결혼은 신중하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그래도 무릎 위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인생의 큰 행복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어려운 행복과 불행의 관계들은 전부 제쳐두고서는 말이죠.
회사 분위기로 잠깐 넘어와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회사에서는 왜 이렇게 결혼을 언제 하는지 궁금해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금방 하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결혼시기를 정하는 건 그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게 좋겠습니다. 아주 가끔 사생활을 공유하고 가족만큼 진심으로 걱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인생의 대소사에 하는 충고는 어떤 사람에겐 잔소리로밖에 접근이 안됩니다. 아마, 집에서 부모님께서 충분히 걱정하고 사랑하시며 말씀하실 테니 큰 관심은 없는 게 좋아 보이긴 합니다.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