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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주로가 있는 밤 Sep 25. 2022

점심으로 돈까스 먹기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어쩌면 가장 기대되는 순간. 심지어 오늘 점심때 돈까스가 나온다고 하면 밥부터 먹고 일하고 싶습니다. 오전 근무는 점심을 먹기 위한 하나의 힘든 운동처럼 지나갑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팀장님과 차장님이 식사를 하러 가시면 급하게 식당으로 갑니다. 왼쪽 줄이 짧은지 오른쪽 줄이 짧은지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사원증을 찍시다.

돈까스를 참 좋아합니다. 돈까스만큼 양과 질이 명확한 음식은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집 앞에 있는 돈까스 집입니다. 맛은 뭐 엄마가 해주던 맛이네요.

돈까스 양하면, 학교 앞을 빼 놀 수 없죠. 물론 급식과 학식도 포함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사비를 조금만 털어서 먹는 걸로 한정해보겠습니다. 학교 앞 돈까스집은 두 덩이를 내어줍니다. 왕돈까스집이 아닌데 크기에 와~ 하게 됩니다. 소스는 오므라이스 소스와 같고 양배추에는 케첩과 마요네즈가 지그그로 뿌려져 있는 게 지론입니다. 한 덩이 고기를 튀긴 게 아니고 고기를 여러 개 겹겹이 쌓았고 가끔 기름이 잔뜩 있는 질긴 부위도 있네요. 밥은 소복하게 같은 그릇에 배치돼서 있고 다 먹었으면 흔쾌히 추가 요청을 하면 됩니다. 된장국과 수프 중에 저는 된장국을 더 좋아하지만 수프의 고소함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빵이 같이 나오는 돈까스집이라면 수프가 오히려 좋겠네요. 수프의 고소함과 빵의 진득함을 입에 잔뜩 넣고 돈까스가 나오길 기다립시다. 드디어, 돈까스가 나오면 슥슥 썰고 급하게 한 덩이를 입에 밀어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칩시다.




회사 근처 돈까스 집입니다. 바삭바삭하고 양배추도 싱싱합니다. 또 먹고 싶네요

돈까스는 질로도 승부를 봅니다.  일단 집기가 다르죠. 된장국에는 쪽파를 썰었고 그릇에 뚜껑이 덮어져 있어 뚜껑을 열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옵니다. 뜨겁겠다는 생각할 시간은 없습니다. 돈까스 소스를 찍어먹는 종지에는 깨가 있기 때문에 제시간에 돈까스를 찍으려면 바삐 아주어야 합니다. 돈까스 맛있게 먹는 법을 메뉴판 뒤에서 읽으며 주문과 동시에 조리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글이 참 군침을 돋우네요. 돈까스 소스를 덜고 젓가락으로 콕 집어 먹으며 시큼함을 느낍니다. 같이 나온 양배추를 덜고 깨소스나  간장소스를 뿌립니다. 반찬은 없지만 돈까스 고기에 집중한 돈까스집이라는 기대감에 혹시 내 돈까스가 나올까 어깨너머로 주방을 살펴봅시다. 그렇게 돈가스가 나오기 전까지 기대감으로 양배추만 2그릇을 먹읍시다.

돈가스는 기름이 잘 빠질 수 있는 망에 자태를 뽐내고 물론 깨끗하게 잘려있습니다. 고기는 2겹 3겹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23겹 정도는 되는 것처럼 두껍습니다. 입에 들어가면 바삭한 빵가루가 퍼지고 느끼함은 겨자를 살짝 먹으며 보내드리죠. 그렇게 마음속으로 또 박수를 치네요.




회사 돈까스입니다. 소스가 참 많아요 밥에 비벼먹으러라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냥 먹읍시다.

그러면 회사 돈까스는 양에 집중했을까요? 질에 집중했을까요?

둘 다 아닙니다. 회사 돈까스는 소스에 집중한 돈까스입니다. 오므라이스 소스를 고집하는 사람이 만든 돈까스. 그는 케첩이나 마요네즈, 겨자를 모두 돈까스와는 맞지 않는, 즉 올바르지 못한 소스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까스를 먹는 날이면 항상 오므라이스 소스만들어서 바삭한 돈까스가 풀이 죽게 했습니다. 풀이 죽어 눅눅해진 돈까스를 오므라이스 소스에 듬뿍 담가 밥과 함께 비벼 먹어봅시다. 박수를 작게나마 치며 기뻐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팀장님이 줄이 짧은 한식코너로 가시네요. 밥 먹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식코너로 갑시다. 돈까스는 그냥 오늘 저녁때 사 먹기로 해고 사회생활을 조금이나마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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