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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주로가 있는 밤 Jul 30. 2022

대리님, 혹시 위인이신가요?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옆자리 대리님은 야근을 합니다. 업무처리 능력이 떨어지나 반문하시겠지만, 우리 부서에서 제일 효율이 좋습니다. 소위 말하면 에이스입니다. 저는 위인전에 나오는 위윈이라고 생각하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돌이켜봅니다. 아마도 잘 안될 것 같네요.


대리님은 착실합니다. 좋은 재료를 모아서 그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채 일을 처리합니다. 마지막 플레이팅까지 본인의 손이 안 들어간 것이 없도록 꼼꼼하지만 "여러분 이거 보세요. 이거 제가 했습니다"라며 거드름도 피우지 않습니다. 본인은 재료 손질과 집기준비 정도만 한다는 느낌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재료 손질을 위한 시장 답사와 업무분류를 수많은 자문회의를 통해 이뤄냅니다. 살짝 맛만 보고는 이 많은 재료를 선정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들의 조언도 빠질 수 없는 조미료입니다. 저 같으면 가볍게 소금을 뿌리고 구울 예정이었던 업무들을 중화 냄비에 강한 화력으로 빠르게 볶아내는 것과 궁중팬에 밑간만 하고 가볍게 버무리는 식의 최적의 대안으로 생각해냅니다. 그렇게 본인이 생각한 최적의 맛을 찾아내 대접합니다. 저는 한 숟갈만 맛볼 요량으로 숟가락을 들지만 이내 다 먹고 나서는 만족하죠. 이게 이 맛을 낼 수 있는 업무였구나. 원래는 가벼운 소금간이 좋은데 중화풍의 완벽한 업무양식을 한 그릇 비워내곤 합니다. 내친김에 궁중음식도 별론대..

착실하게 업무만을 잘하냐고 여쭤보면 그건 또 그런대로 아닙니다. 대리님은 끝난 업무를 설거지하고 닦아서 정리하는 것까지가 끝인걸 압니다. 그릇을 친환경으로 닦을지 물 온도는 기름이 잘 닦일 만큼 따뜻한지 따위를 고려합니다.
대리님은 마지막 설거지의 세재 잔향에 따라 그릇에 담긴 음식의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미묘한 차이를 압니다. 그래서 완료된 업무를 통해 감사 착안사항이나 예산 최적방안을 발표하며 다음번에는 어떤 도마에 올려 음식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합니다.


옆자리에서 항상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됩니다. 저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라서 질문하기 벅찬데, 마땅히 몰라도 되는 것과 이제는 알아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줍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의심은 금물이라는 위인전의 명언이 자랑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본 착각만 하던 사람들과 대리님을 비교해보면 속뜻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못된 것 자체를 몰라서 착각만 할 수 있고, 의심은 직접 해본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대리님을 통해 더 좋은 방향으로 저도 발전하고 있겠죠. 물론, 이것도 저의 착각입니다. "00주임은 아무래도 개판이야, 뭐라도 잘할까 걱정이네"라고 이야기를 하셔도 하는 수 없습니다. 제가 당연히 찌다만 감자만도 못해서 그런 거겠죠. 하지만 한 번은 잘하고 있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 아무래도 직접 말하기는 부끄러워서 주하게 책상을 정해서 관심을 끌어보겠습니다. 대리님이 "내일 뵐게요"라고 하시네요. 어째서 퇴근시간이 또 다가왔습니다. 퇴근하려고 눈치 준건 아니지만 찌다만 감자는 오늘 과감하게 먼저 인사하고 퇴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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