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싫다고 휴가 쓰는 선배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입사한 시기부터 연차가 존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꽤 많은 앞선 연차, 즉 선배들을 봐왔는데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다는 사람은 크게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은 싸한데? (물론 제 생각입니다)"라는 선배는 몇 분 뵜었네요. 저보다는 선배님이지만 과연 정말 선배일까? 직장인의 책임은 무엇일까? 일 하기 싫다고 떠 넘기고 그만둘 수 있는가? 회사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연차별로 나가야만 하는가? 우리나라의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가? 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아직 감자 같은 저에게 "업무"걱정이 아닌 "사람 걱정"을 시켰던 사람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본인이라고 눈치를 채기라도 하면, 특히 누군가가 본인 같다고 손뼉을 딱 친다면 정말 안 좋은데 라는 내심 걱정을 하며 써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다른 글들의 누군가가 본인 이야기라고 지적받은 적은 없네요. 그래서 이 이야기도 사실은 허구에 가까운 사실입니다.

회사의 많은 선배들이 그러한 것처럼, A 선배도 회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만났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이에 등장했던 A 선배의 업무보고 방식, 식사습관, 언행과 근무태도까지 디테일을 차례차례 붙여나가면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간상을 생각해 볼 수 있었죠. 바로, 이런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거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아, 이 선배가 이게 중요해서 그때 나에게 이야기했구나"라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아, 그러니깐 이 부분은 A 선배가 말하는 것처럼 해야겠다"라는 일은 일단 없었네요.  왜냐하면, A 선배의 지시사항은 거의 대부분 무조건적 "불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불만은 좋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서 발전할 수 있으니깐요. 옛 유대인들은 10번째 법칙이라고 해서 10명 중 9명이 찬성한다면 무조건 1명은 반대하여 논리를 따져본다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다수결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 일 수 있지만, 얼핏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깐요. 그렇지만, 공격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 남을 위해 아득바득 일하는 건 너무 싫다. 그냥 오늘도 대충 해야겠다"라고 속으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직접 내뱉는 건 다른 일입니다. 그리고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그냥 대충 하죠"라고 한숨만 쉬면서 행동한다면-물론 이야기도 가끔 합니다만- 일 하는 사람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죠.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그냥 대충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할 일을 합니다.  그냥 돈을 받는 각자의 업무이기 때문에 그걸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A선배는 동료들과 싸웁니다. 특히, 상급자와 소리치며 다툽니다. 사실 회사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솔직히 영 안 맞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일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일을 해나가야 하니깐요. A 선배처럼 사람이 싫다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동을 취하고 맞부딫치면서-때로는 피하면서-상황이 굴러가도록 이야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깐 "이 사람은 나랑 영 아니네"라고 하더라도 고집부리지 않아야 하죠. 특히 상사가 어떤 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깐 매번 동료들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보다는 머릿속에 담아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특히, 상대가 쉽게 이해해줄 것 같다고 간략히 설명하면 안 됩니다. 설명이 너무 길어지더라도 다그치고 격려하고 등을 떠밀어 알려주어야 됩니다. 특히 중요한 업무라면 더 꼼꼼해야 합니다. 실실 웃으면서 "네, 알아서 하세요"라고 이야기하곤 "내가 그때 말했잖아요!"라고 화내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본인의 일정도 중요하지만,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서 인수인계를 하려면 한 단 씩 사다리를 만들어 주고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A 선배는 3개월 전부터 팀장님과 이야기하기 싫다고-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밖에 없네요-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기나긴 휴가를 떠났습니다. 뭐 다 그런거지라고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하지만 시기를 놓쳐 상당히 우회하게 되는 A 선배의 업무들을 처리하는 우리들의 심정은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네요".

너무 A 선배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일을 하려면 어찌 됐든 회사에 나가야 합니다. 동일한 의미에서, 회사에 안 나오고 휴가를 써버리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에는 언제까지 해야 한다라는 기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A 선배는 하기 싫다고 휴가를 썼네요. A 선배의 부재로 인한 구체적인 혼란과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업무들 때문에 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말에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게 힘들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