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이삼 년을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공기업의 특성상 여러 지부로 매년 부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세대가 바뀝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부서,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부서, 그리고 적당히 잘 버무려진 성비를 가진 부서가 있겠네요.
회사는 하나의 큰 밥상 같네요.
밥상으로 비유하자면 밥, 국, 그리고 반찬들이 모여서 한 팀을 이룹니다. 각각의 반찬에는 다른 역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서로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죠. 물론, 밥상의 주인-우리 부서는 팀장님입니다-의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밥상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배고픔에 따라 한식이 끌리면 국밥 같은 든든한 차장님이 업무를 주도하고, 양식이 끌리면 딴 나라이야기 같은 미래주도적인 차장님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래도 저는 기본적으로, 국이라고 할까요. 없어도 그만이지만 목맥이는 일들을 그나마 풀어 갈 수 있는 신입딱지를 갓 때어버린 콩나물 국정도로라고 간주합니다. 밥처럼 꼭 필요한 대리님 옆에서 한 입 거들 수 있는, 나름대로 업무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간이 덜된 국입니다.
콩나물 국을 끓일 때에는 한참 끓어오르기 전까지 냄비뚜껑을 꼭 닫아두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취업준비를 할 때 콩나물 같이 꽁꽁 막혀있던 제가, 밥상 한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기분 좋기도 합니다. 이번 밥상의 국그릇 위치는 어디인지, 어른이 먼저 한 수저 뜨는 걸 기다리는 밥상 예절은 어떤지를 고려하는 건 회사라는 큰 밥상에 녹아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밥상 한구석도 나름대로 기분 좋네요.
그렇게 어떤 음식이든 될 수도 있던 저는, 후배에게는 따뜻한 콩나물밥, 선배에게는 밍밍한 콩나물 국, 팀장님에게는 콩나물 반찬 정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딱 알맞은 위치를 찾아가는 것 같아 그건 그 나름대로 기분이 좋네요.숲 속의 나무, 시계 속의 톱니바퀴, 그리고 큰 밥상 속의 따스한 콩나물 국. 떠받치고, 공유하고, 그리고 한 구성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는 기분 좋음이 공기업의 소속감 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