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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주로가 있는 밤 Feb 21. 2023

공기업의 소속감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이삼 년을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공기업의 특성상 여러 지부로 매년 부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세대가 바뀝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부서,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부서, 그리고 적당히 잘 버무려진 성비를 가진 부서가 있겠네요.


회사는 하나의 큰 밥상 같네요.

밥상으로 비유하자면 밥, 국, 그리고 반찬들이 모여서 한 팀을 이룹니다. 각각의 반찬에는 다른 역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서로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죠. 물론, 밥상의 주인-우리 부서는 팀장님입니다-의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밥상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배고픔에 따라 한식이 끌리면 국밥 같은 든든한 차장님이 업무를 주도하고, 양식이 끌리면 딴 나라이야기 같은 미래주도적인 차장님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래도 저는 기본적으로, 국이라고 할까요. 없어도 그만이지만 목 맥이는 일들을 그나마 풀어 갈 수 있는 신입딱지를 갓 때어버린 콩나물 국 정도로라고 간주합니다. 밥처럼 꼭 필요한 대리님 옆에서 한 입 거들 수 있는, 나름대로 업무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간이 덜 된 국입니다.


콩나물 국을 끓일 때에는 한참 끓어오르기 전까지 냄비뚜껑을 꼭 닫아두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취업준비를 할 때 콩나물 같이 꽁꽁 막혀있던 제가, 밥상 한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기분 좋기도 합니다. 이번 밥상의 국그릇 위치는 어디인지, 어른이 먼저 한 수저 뜨는 걸 기다리는 밥상 예절은 어떤지를 고려하는 건 회사라는 큰 밥상에 녹아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밥상 한구석도 나름대로 기분 좋네요.

그렇게 어떤 음식이든 될 수도 있던 저는, 후배에게는 따뜻한 콩나물밥, 선배에게는 밍밍한 콩나물 국, 팀장님에게는 콩나물 반찬 정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딱 알맞은 위치를 찾아가는 것 같아 그건 그 나름대로 기분이 좋네요. 숲 속의 나무, 시계 속의 톱니바퀴, 그리고 큰 밥상 속의 따스한 콩나물 국. 떠받치고, 공유하고, 그리고 한 구성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는 기분 좋음이 공기업의 소속감 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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