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봉씨 Oct 05. 2021

의지의 무게

사람의 감정은 왜 복잡해서.

새벽 2시.

거실에서 동물 사랑에 관한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를 읽고 있는데  나와 세네 걸음 떨어진 스크래처 위에서 모로 등지고 자던 대봉이 뒤통수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기 펭귄 같은 회색 머리를 일으켜  와우웅 아우웅  네다섯 번 크게 울더니 고개를 꺾어 나를 찾았다. 그리고 우린 거꾸로 보이는 얼굴을 서로 마주했다.

머리를 너무 젖히는 바람에 스크래처 위에서 연체동물처럼 흘러내리다 형체를 갖추고 소리 없는 걸음으로 가왔다. 

내 앞에   가지런히 으고 앉아 잠이 덜 깬 으로 날 향해 끔뻑끔뻑. (꺄)


"대봉아, 왜 그래. 대봉 엄마 꿈꿨어?""

그르릉 그르릉

"나쁜 꿈 꿨어?"

그르릉 그르릉


갑자기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은 거니.

대봉이는 쿠션에 기대어 있는 내 배 위에 두 팔을 올리고 반쯤 걸터앉았다.

짧은 털이 난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어주니 입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연신 목을 울린다.

고요한 새벽의 이 장면이 행복하지만 의지의 무게에 대해 일어나지도 않는 슬픔이 밀려온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마지막에 남는 이는 언제나 나라는 것.

.

.

.


나의 첫 번째 고양이의 이름은 나봉이였다.

14살에 심신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는 약 6개월 뒤에 두 번째 고양이를 만났다.

처음 만난 날, 케이지 안에 있는 상태로 임보를 가장한 분양을 받았는데, 손을 수욱 넣어보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등이 넓었고 탄탄했다.

대체 얼마나 큰 고양이인 거지?

집에 도착해 케이지 밖으로 슬금슬금 밖으로 나오는 자태... 가 아니고 모양이 크고 구부정하고 뚱뚱하다.  머리통은 어찌나 크던지, 이 아이는 나봉이 동생 대봉이가 되었다. (내가 대봉 감을 좋아하기도 한다.)

사랑스러웠던 나봉이와 다르게  대봉이는 고양이 같지 않은 행동을 했고, 사람에게 너무 예민하게 굴다 못해 피를 는 일은  다반사였다.

어두운 밤에 나긋한 목소리로 "대봉아, 같이 자자." 하고 이불을 톡톡 치면 눈에 10원짜리 두 개를 달고 날 사냥감 취급했, 그 와중에 손이라도 내밀면 6킬로의 육중한 몸뚱이가 나를 짓밟아대고 상어처럼 팔을 물고 흔들어대서 이불속에서 살 한 부분도 꺼내지 못해 미이라처럼 잠을 자야 했다.

아, 이토록 정 없는 고양이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다니!

과거에 아픈 나봉이를  케어해 주셨던 담당 의사선생님은 "대봉이 꼭 키우세요! 검사 결과 너무 건강해요! 유기묘 검사비 20% 할인해드릴게요." 라며 입양을 부추겼고, 그에 힘입어 키우기로 마음 먹자마자 고양이 방광염이 터져 150만원을 통 크게 투척했다. 대봉이와의 첫 만남은 책임의 무게를 지고 싶지 않을 만큼 쉽지 않았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

.

.

.

.

내일 있을 미팅을 위해 책을 덮고 일찍이 침대에 누웠다.

꿈의 잔상에 울어대던  대봉이는 잠이 다 깼을 텐데 다시 내 겨드랑이 사이에 파고들어 그르릉 목을 울린다.

대봉이가 내 앞에 오면 나는 이불속에서 팔을 꺼내어 베개가 되어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발톱을 꽁꽁 숨긴 폭신한 손으로 내 얼굴을 톡톡 치면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잠들 준비를 마친 대봉이의 졸린 얼굴을 벅벅 긁어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목의 진동과 따듯한 체온을 느끼며 생각한다.

3년을 함께한 우리는 이제 사랑해서 슬플 수 있는 관계라고.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어느 날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