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부문 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을 발표하는데 문학 수상자가 먼저 나갔다.
... 말들을 너무 잘한다. 유명인의 말까지 인용하며 (oo작가가 이런 말을 했죠......) 막힘 없이 유려하게 발표하는 걸 보니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옷 위로 심장이 뛰는 게 보일 정도였다. 저렇게 준비해야 하는 거야? 방금 생각했던 소감마저도 백지가 되었는데 어쩌지? 글작가의 여유 넘치는 소감을 들으며 모두들 웃을 때. 나도 같이 웃는 얼굴을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머리가 텅 비어있었다.
드디어 그림책 부문 시상식.
나 포함 세 명이 호명되었다. 셋 다 너무 구석에, 벽에 붙을 정도 서있다.
사회자분이 앞으로 좀 나오시란다.
수상소감도 문학팀의 5분의 1 분량 정도로 짧다. 게다가 난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책 수상소감에서 왜 언니들의 험담을 하고 사람들을 웃기고 있는지, 앞 뒤는 맞게 얘기하고 있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제 언니가 어릴 때 놀아주지 않아서 심심해했던 시절을 담았습니다. 언니를 시상식에 초대해서 안 놀아준 덕에 상 탔다고. 고맙다고 면전에 이야기해주고 싶었는데 아이 학원 때문에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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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가분은 머뭇대다 거의 인사만 하고 나가셨다. 엄마 얘기에 울먹인 걸 수도 있다.
작년엔 수상소감을 아예 안 한 작가도 계시다고 하니 나 정도면 근사한 소감인가.
출판사에서 말하길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분위기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글작가의 지인들은 바글바글 와서 수상을 축하해주는 분위기라면, 그림작가는 수상 소식 조차 말 꺼내기 힘들어하고, 왁자지껄하게 와주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글작가는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고 그런 본인의 철학이나 넘치는 생각들을 외부에 발산을 하며 인간관계를 자연스레 쌓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림작가인 나의 경우는 가만히 집에 앉아 말없이 작업하는 게 제일 편하다. 사실 누군가 집에서 몇 달 동안 안 나가고 꼼짝 않고 있으라고 하면 난 기꺼이 그럴 수 있다.
이런 생활이 오래도록 습관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많고 주목이 되는 자리에선 자연스레 나를 보호해 줄 벽에 의지하는 상황이 된다.
앞으로 또 나설 일이 생긴다면
나는 분명 준비 없이 떠오르는대로 실없는 말을 하고 내려올 것이다. 나는 뭘 하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무적으로 느꼈던 것은 시상식 후 식사하러 가는 길에 나의 소감을 기억해주신 까마득한 어린이 문학 대선배님께서 흥미를 느끼며 함께 걸어주셨다는건데, 이 정도 관심이면 준비 없이도 꽤 성공적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