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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유교 사회가 아니다

한국인은 이제 유교를 공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이 왜 유교 사회인가?

도발적인 제목이라고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종종 해왔을뿐더러, 시사인에서 타일러 라시를 인터뷰한 칼럼을 읽고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사회는 제가 생각하던 것과 방향이 같았습니다. 제일 인상 깊게 읽은 인터뷰의 한 부분을 여기에 인용합니다. 


Q. 토론 태도가 인상적이다. 질문의 전제에 의심을 품고 역으로 질문한다.

A. 미국 사람은 기본적으로 권위에 대해서 좀 회의를 가지는 것 같아요. 중앙정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윗사람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 늘, 그런 기질이 좀 있어요. 내가 왜 그래야 돼? 이런 거. 

그게 학계에서나 대학에서나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토론할 때 질문을 하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거기에 익숙한 거예요. 저에게는 당연한 건데 한국 학계에서는 많이 안 하죠. 질문을 많이 안 하고, 하더라도 우회적으로 하고(웃음).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게 학교 주입식 교육 때문인 것 같아요. 

유교적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냥 개뿔(인터뷰 중에 나온 가장 격한 단어였다)인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논어>를 보면 다 질문을 전제로 가요. 보수적이라는 옛날 유교에서도 자꾸 질문을 하면서 담론이 이루어지는데, 지금 시대에 그렇게 질문을 억누르는 건 제가 보기에는 그냥 권위주의예요. 권위 있는 사람한테 질문하지 말라는 거는 유교도 아니에요. 

장유유서도 마찬가지예요. 장유유서가 그냥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 질서가 있다는 것뿐인데 존댓말하고 존경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나이가 많다고 지하철에서 막 밀고 가는 게 장유유서가 아니잖아요.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해줘야 하는 대우가 있는 것만큼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해줘야 하는 게 있는 거고. 그런 걸 다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모르겠어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유교적이야, 하면서 그것 자체도 묻지를 않는 거죠.

“질문하는 ‘영리한 관찰자’ 타일러 라시”, 시사인 


타일러와 마찬가지로 제가 오랫동안 의문을 품은 부분입니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유교를 공부하지도 묻지도 않는데, 왜 한국을 유교사회라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은 유교 문화권 또는 유교 사회라고 당연한 듯 말하지만, 정작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유교 철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한, 유교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모두 완독 하거나,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현재의 한국에는 거의 없습니다.


사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합니다. 유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일곱 권의 책을 읽지도 않고 유교를 논하는 것은, 불경을 읽지 않고 불교를 논하고,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독교를 논하고, 코란을 읽지 않고 이슬람교를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교는 지도자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권위주의는커녕,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이 단점으로 지적할 정도로 유교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입니다.

“도가는... 그 이치는 간명하면서 파악하기가 쉽고, 힘은 적게 들지만 효과는 크다. 유가는 그렇지 않다. 군주를 천하의 모범이라 여기기 때문에 군주가 외치면 신하는 답하고, 군주가 앞장서면 신하는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군주는 힘들고 신하는 편하다.”

<사기> 열전 - 태사공자서 


한국에서 해석이 가장 잘못된 삼강(三綱)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강은 복종의 개념이 아닙니다. 강(綱)은 벼리 강으로, ‘벼리’는 그물에서 중심이 되는 굵은 줄을 말합니다. 이 굵은 줄에 하자가 있으면 그물은 흩어지게 됩니다.

그물의 중심이 되는 '벼리'

굵은 줄이 먼저 제대로 돼야 함을 말하듯이, 삼강도 모범의 개념입니다. 신하는 임금에게 복종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복종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 
부위자강(父爲子綱): 부모는 자식의 벼리가 되고,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니, 

임금, 부모, 남편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 유교의 핵심 가치는 수신(修身)입니다. 수신을 쉽게 풀이하자면, “일단 너부터 잘하세요.”란 뜻입니다. 충효(忠孝)는 수신 이후의 문제입니다. 

“천자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함이라. 그 근본이 혼란스러운데 어찌 드러나는 말단이 가지런히 다스려질 수 있으리오!” 

<대학> 


왕이 모범을 보이면, 신하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면, 일반 시민/국민은 따릅니다.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TV에서 국민의식을 운운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고, 계산대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는 식당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하는 건 코미디입니다. 


<맹자> 제7편인 진심 장구 상(盡心 章句 上)의 17장에 따르면, 

“자기도 하지 아니할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고, 자기도 하고 싶어 하지 아니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원하지 말 것이니 그렇게 해야만 하도다!”


<논어> 제12편 안연 2장에도 똑같은 말이 그대로 있습니다. 

“자기도 원하지 아니하는 일을 남에게 하라고 떠넘기듯 옮기지 말라.” 


경전의 이 문구를 봐서는 대한민국이 유교 사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유교는 권위주의가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현재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유교는 조선 말기의 폐단, 일제시대의 민족말살정책, 군부독재시대의 권위주의가 뒤섞인 혼란입니다. 진실한 유교가 왜곡되고, 점점 맥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유교는 명분(名分) 없는 맹목적인 충효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유교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학문으로 허례허식도 지양합니다. 


유교는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공부하는 학문으로 충효(忠孝)는 그 시스템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유교의 충효는 개인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이 아닙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아니하면 백성이 군자의 말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백성이 군자의 말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정사(政事)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니라. 

<논어> 제13편 자로 3장 
임금의 말이 선(善)하지도 아니하거늘 만일 아무도 그 말을 거스르지 아니한다면 한마디로 나라를 잃는 것이 어느 정도는 그리 되지 아니하겠사옵니까? 

<논어> 제13편 자로 15장
임금께 큰 과오가 있으면 간언 하고, 그것을 반복하여도 들어주지 아니하면 임금의 자리를 다른 이로 바꾸어 버립니다.

<맹자> 만장 장구 상 9장 


이 외에도 유교 경전에는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훨씬 더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새 한국의 유교는 굉장히 부정적인 폐단의 동의어가 되었고, 일방적인 절대복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디스 이즈 코리안 스타일?) 


유교 경전이 묘사하는 성현(聖賢)을 제대로 접해보면, 성현들은 현대인이 어렴풋이 상상하는 진부하거나 권위적인 인물들이 아닌 걸 알 수 있습니다. 


공자의 경우, 그는 자신의 권위와 지식을 이용해서 상대를 절대 깔아뭉개지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논어>의 대부분은 공자와 제자, 대부, 왕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자, 대부, 왕이 공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면, 공자는 끝없이 답해줍니다. 그것도 똑같은 답이 아니라, 질문자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심지어 공자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이 아닌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답을 내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자신과 토론을 하던 중, 제자가 통찰력 있는 답을 내놓으면 “이제야 너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며 기뻐한 대인(大人)입니다. 


“어린놈이 감히!” 

“묻지 말고 그냥 해!” 

“질문은 나중에!” 


‘유교문화’라는 간판 아래, 한국은 단순히 권위주의를 지켜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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