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루 Apr 06. 2023

#38. 넘겨 주니라

요 19:1-16

[5절]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예수님은 조롱거리로 전시되었습니다. 로마와 유대의 두 권력 사이에서 서로의 주장과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평소 유대인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빌라도이기에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기를 즐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명백할 죄목도 찾지 못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우기는 유대인들의 뜻대로 해주었다간 빌라도 자신과 로마 권력이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거듭 말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때리고 조롱하도록 찬동합니다. 빌라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권력과 지위뿐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와 독대할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예수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귀중한 대답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진리의 말씀을 귀로 듣고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10-11절]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사람들은 자기의 권한을 귀중히 여깁니다. 그것이 위협받거나 억압받거나 무시당하면 격분합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그 권한에 두고 사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에게 주어진 권한은 모두 위에서 주어진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라도 반드시 그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고, 뛰어난 전문직 사람이라도 언제든 다른 인재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여 온 세상에 자기 혼자 뿐이라 여기는 위대한 인물이 되더라도 늘 그의 권한을 탐하고 훔치고 위협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자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만큼 위태로운 상태를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리도 허무한 것에 제 정체성을 두지 않길 원합니다. 위대한 로마가 부여한 권한이라도 그것이 빌라도를 온전케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도 다른 권력자들처럼 군중의 말에 휘둘리는 꼭두각시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의 황제들도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흔들려 자멸했는데, 사람 중에 가장 지혜 있다던 솔로몬도 그러했는데, 누가 이 허망한 결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한 지혜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유대인들도 아니요 종교 지도자들도 아니요 빌라도도 아니요 로마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위협은 위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온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심을 믿으며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빌라도를 보며 불안해하지 않으셨고 아무 근거 없이 마구잡이로 결정되는 판결들에 억울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보고 믿기를 원합니다. 제 삶에 닥치는 무수한 일들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내게 영향을 행사는 모든 권한이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설령 이 일이 나를 수치과 고통의 죽음으로 몰아가더라도 저는 반드시 부활하고 승리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태초부터 오늘까지 제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하소서. 이전에 두려워하고 놀라던 일들도 이제는 믿음으로 평안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제게 주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12-16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왕은 가이사였습니다. 가이사는 당시 세상의 왕이었죠. 그들에겐 두 왕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왕 중에 누구를 자기의 왕으로 삼을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 역시 ‘나는 가이사의 충신이다’라고 자신의 행동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의 왕은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성경은 빌라도의 입을 빌어 매우 역설적으로 이것을 증언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이는 오늘도 교회 안에 있는 자와 외인들에게 동일하게 선포되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를 왕으로 삼는 것,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 언제나 인류에겐 양자택일만 주어져 있습니다.

 동기와 목적, 모든 비전과 계획의 근간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입술로 아무리 ‘예수는 나의 왕’이라 고백해도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기만의 죄를 가중하여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고난 주간의 목요일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를 배신할 자들과 자기를 팔아넘길 자들과 자기를 저주하며 모른다고 할 자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밤입니다. 여전히 당신을 배신하고 대적하고 죽이려 들며 소리 지르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오 그 사랑.. 그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보여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 날은 기회입니다. 빌라도에게 예수와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 기회였듯, 사순절과 고난 주간에 예수의 말씀을 들음이 기회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왕으로 전시되셨을 때가 그들이 눈을 뜨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할 기회였듯이, 오늘날 조롱거리가 된 교회에 출석하며 예배하고 교제하는 바로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주여.. 이 기회는 곧 사라집니다. 이 기회는 곧 지나갑니다. 이 기회는 곧 사망에게 “넘겨 주”어야 합니다. 그전에, 늦기 전에, 바로 오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참혹한지와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37. 빌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