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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pr 09. 2023

/ 빗속을 걸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걸었다.

비가 채색하는 세상은 익숙했던 모든 장면을 새롭게 하여

이 커다란 세상 속에

작은 우산 하나뿐인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그 지혜롭고 준엄한 비의 향을 뚫고

라일락 향이 느껴졌다


너는 우산도 없이 무한한 빗방울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었다

경외로운 그 자태에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다리부터 허리까지 빗물이 침범해 올라왔다


손톱만 한 꽃잎을 너는 결코 놓지 않는구나

쉴 새 없이 뺨을 치는 빗방울에도 너는 우직하게 향을 내는구나

그런데도 나는 이 우산을 내려놓을 용기조차 없다

어느새 비의 침입은 두 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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