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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Feb 24. 2024

영화_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 사무엘

그는 이미 추락하고 있었다. 그의 꿈이었던 글은 써지지 않았다. 그의 삶은 마침내 차가운 눈 위에 추락하며 붉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완성되었다. 그가 그토록 만들고자 했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완성되었다. 그의 죽음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죽음 속에 모두가 역할을 부여받은 등장인물이 되었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이 되어 온 세상에 전시되었다.


사무엘이 수년간 이루지 못한 꿈을 산드라는 너무 쉽게 이루어냈다. 첫 성공에는 함께 기뻐했을 것이다. 두 번째 성공에는 내심 부러웠을 것이다. 세 번째 성공에는 모멸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산드라의 소설들은 모두 현실에 기반한다. 그녀의 삶은 글감이 되어 또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그녀는 그 세상의 창조주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녀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엔 흥미로웠을 것이다. 두 번째는 불편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의 삶은 온통 그녀의 글감이 되었다. 사무엘은 그녀의 책 속에 갇힌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무엘은 숨을 쉴 수 없어 발악하는 사람처럼 산드라에게 호소한다. 그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하며 자신은 완전히 포박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산드라는 창조주처럼 말한다. 너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네가 결정하고 네가 선택한 일이라고. 그러나 사무엘의 선택, 사무엘의 삶이 온통 그녀가 기록한 글자들 속에 존재한다. 

사무엘은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래서 자신이 추락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출구라 생각한 것일까?


사무엘의 삶은 산드라의 책을 통해 온 세상에 공개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고자 할 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피해 자신의 고향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속 오두막으로 도망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그녀의 소설 속 인물로 사무엘을 투사했다. 실제 사무엘이 어떤 인물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빈센트가 재판에 관해 말한 것처럼 말이다.

사무엘의 죽음을 통해 산드라와 다니엘의 삶은 온 세상에 전시되었다. 이제 사무엘의 작품 속에 두 사람은 등장인물이 되었고, 온 세상은 서술된 문장들로 두 사람을 정의했다. 재판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많은 고생을 한다. 어쩌면 사무엘은 혼자서 이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일 수도.


#산드라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재판이 시작되었다. 자신은 남편을 죽인 사람이 되었고, 모든 것이 증거로 탈바꿈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마디 진심을 말하면 열 마디 왜곡을 들어야 했다. 모두의 눈이 자신을 살인자로 보는 듯했고, 모두의 귀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여기는 듯했다. 내 편이어야 할 이 변호사는 나를 믿는가? 내 아들은?


그녀는 사무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프랑스에 왔고 사랑했기에 함께 살았고 사랑했기에 대화를 했고 사랑했기에 싸웠다. 사랑했기에 아들의 사고도 남편 탓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남편의 연약함까지 짊어지려 했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짊어지고 어떻게든 이 두 남자를 사랑하고자 안간힘을 다했다.


그런데 산드라는 사무엘에게 단 한순간도 공감하지 않는다. 사무엘의 생각과 마음이 어떨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시선과 판단으로 사무엘을 대한다. 사무엘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당신이 약해서 그래, 당신이 자초한 거야, 당신이 과장하는 거야. 판단한다. 오직 판단만 한다.


마찬가지로, 산드라는 다니엘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하지 않다. 다니엘을 걱정하는 듯 하지만 자기변명만 할 뿐이다. 다니엘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뿐이다. 다니엘의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산드라는 다니엘과 협주하지 못한다.


산드라는 사랑한 것일까? 



#다니엘

다니엘은 자신의 사고를 받아들인다. 다니엘은 아버지의 일을 받아들이려 한다. 침착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이야기하고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듣는다. 수많은 말들 속에 다니엘만이 귀를 기울인다. 수많은 감정들 속에 다니엘만 차분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어둠 속을 더듬어 길을 찾듯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인도하는 것은 언제나 ‘스눕’(개)이었다. 다니엘은 엄마에게도 모니카에게도 마르쥬에게도 진실을 구했으나 누구도 다니엘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오직 스눕만이 침묵으로 다니엘의 길을 인도했다. 다니엘은 볼 수 없고 스눕은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보고 듣고 말할 줄 안다고 확신하는 이들의 무분별한 폭력들 속에서 잠잠히 듣고 생각했던 것은 다니엘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었고, 진실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기까지 신중하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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