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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Oct 21. 2021

어려운 사람이 안 되는 게 너무 어려워

치우친 취향에 대하여

나의 별명 '두루미'처럼 두루두루 아름답게 잘 지내면 좋으련만, 사실 공동육아에 있는 7년 동안 그렇게 아름답지 만은 못했다. 이곳에 들어와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수많은 나의 못난 점들을 발견했고, 만나지 않아도 될 '인연'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나랑 달라도 너무 달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있다'는 걸 그냥 알고만 있는 것과 직접 만나 확인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 앞에는 옹졸하고, 쪼잔하며, 감정조절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미운 오리 같은 내가 있었다. 고고한 두루미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건 신경도 안 쓴다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누가 날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걸 무척 신경 쓰곤 했다. 


'고사리'와는 4년 넘게 함께 공동육아를 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집에 가 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초대' 받은 적이 없다. 어느 날인가는 하원을 하러 터전에 가보니 아마들 몇몇이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사리의 아이도 있었다. "오늘 고사리가 바쁜가 봐요? 대신 하원 해주는 거예요?" 고사리와 이웃에 사는 '다람쥐'가 보여 아무 생각 없이 물은 거였는데, 다람쥐는 당황하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네네" 중얼거리듯 대답하고 나를 피했다. '왜 저렇게 당황하지?' 생각하며 둘러보니 곁에 있던 다른 아마들도 상황이 비슷했다. 그때 '빨강'이 귓속말을 건넸다.


"고사리가 아마들을 집에 초대했어요. 아이들 저녁 같이 먹이고 놀자고요."


따로 톡방을 만들어 대부분의 아마들을 초대한 모양인데 초대받지 못한 극소수의 아마 중 한 명이 나였던 모양이다. 다들 불편해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고 나는 얼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 맞아. 싫은 걸 이렇게 대놓고 티 내는 것조차도 나랑 안 맞아. 진짜 싫어. 내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알아?"


그날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아 거북이에게 투덜투덜 팝콘 튀기듯 불만을 쏟아냈다. "뭘 일일이 신경 쓰고 그래. 원래 잘 안 맞는다고 그랬었잖아. 불편한가 보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거북이를 보고 있자니 울컥하고 뜨거운 게 치밀었다. "불편한가 보지? 내가 불편해? 왜?"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도 좀 그렇다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뭘 어쨌다고! 기분 나빠." 속에서 열불이 올라 결국 거북이와 싸웠다.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두루미는 음.... 뭐랄까... 맞다! 바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이미지가 있지."


둥굴레가 뭐가 재미있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에 뭐가 날아와 쿡 하고 박히는 것 같았다. 애써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짓느라 속으로 발버둥을 치며 물었다. "왜요?"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틀린 말은 안 할 것 같고 그런 거...." 그래서 이렇게 막말하는 거냐고, 나는 골무가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조합 생활을 하며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내가 타인에게 그러하듯) 나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가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는 막역한 사이가 되고, 누군가와는 막막한 사이가 되어갔다. 


"두루미한테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고민될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조합원 누구 흉을 본다던가... 아, 이러면 안 되지만요(웃음) 공동육아의 힘든 점, 불만스러운 점들을 막 떠벌리고 싶을 때... 두루미는 이런 게 없겠지만(웃음) 그럴 때가 있거든요."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을 때는 다친 데를 또 다친 것처럼 속이 쓰라렸다. '내가 흉보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힘든 점이 없기는 다 죽어가는데...' 내 속마음도 모르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두루미는 일단 재미가 없어요." 햇님이 농담처럼 던진 말을 가슴에 꿍하고 싸들고 왔던 날에도 어김없이 거북이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왜 재미가 없어? 나랑 안 맞는 사람들이 내가 재미없다는 거야. 유머 코드가 안 맞거든. 그런 식 유머 나도 노땡큐야."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쪼그라들다 못해 우주의 쩜(.)이 되어 아예 소멸돼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외강내유'한 나는 겉으로는 어찌나 강한지, 할 말은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하는 태평한 성격이 되지 못해 슬픈 두루미다 보니, 늘 적 아닌 적을, 확실한 경계를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주말 청소 너무 힘들지 않아요? 우리 집 청소도 힘들어서 잘 못하는데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요즘 외부 청소 업체 쓰면 얼마나 깨끗하게 해 주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쓰는 업체도 가격 생각보다 얼마 안 나가요." 


방모임에서 이런 넋두리들이 나오면 기어코 


"편한 걸 조금씩 찾다 보면 그다음, 그다음은 더 쉽게 열리지 않을까요. 맛단지 아마, 교육 아마가 더 힘드니 그쪽에 외부인을 고용하자는 의견도 나올 수도 있고.... 당장은 몇만 원이지만, 조금씩 편해지는 비용을 더 내게 되면 결국 이곳은 비싼 비용을 내는 사립기관과 다를 게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이런 말을 해야만 하는 나였다.(안 하면 잠이 잘 안 왔다.) 누군가 교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시킨 적도 없는데 나 홀로 교사회의 결사대가 되길 자처했다. 바른말만 하는 FM. 어려운 사람. 그러나 실상은 빈 곳 투성이인 허당. 그게 나였다. 공동육아에 7년을 있으면서 이사회만 다섯 번을 했지만 유일하게 재정이사만큼은 해보질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숫자만 보면 머리가 당최 돌아가질 않는다. 마치 다른 차원의 언어처럼 모든 게 아득해진다. 살림이나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그것도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럴 땐 또 두루두루 대충 넘어가길 좋아했다. 어쩌면 평소에 두리뭉실한 성격 때문에 공동육아에서 만큼은 더 칼같이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허술하고 자신 없는 점들을.... 이곳에서 만큼은 제대로 잘해보고 싶어서. 


어린이집에서 내가 가장 작아졌던 순간은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탓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다. 평생에 나만이 선의의 피해자 일 줄 알고 살아왔는데, 나 싫다고 조합을 나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건 인생에 손꼽히는 사건 중에 하나 임에 틀림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흔들리는 걸 보이기 싫어서 꿋꿋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오면 무너져 내렸다. 


'나 어린이집 때려치울 거야. 낮잠이불이랑 짐도 오늘 다 싸들고 왔어. 힘들어서.... 하루도 더 못 있겠어.'


거북이한테 문자를 보내 놓고 엉엉 목 놓아 울었다. 이곳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서럽고 속상했다. 서럽고 속상했던 점들을 너끈히 오십 개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 두루미, 제발 사람들 앞에서도 좀 울고 그래. 그래야 두루미도 힘들다는 걸 알지." 내 못난이 같은 모습을 알고 있는 통통은 자기 일처럼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렇게 힘들면 그래 나가자, 두루미. 나도 같이 나가야지 뭐." 통통의 말에 나는 간신히 추슬렀던 마음을 다시 쏟아놓고 울었다. 내가 이곳에서 7년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를 거다. 그만큼 악착같이 피 한 방울 안 나올 얼굴을 하고는 버티던 내가 있었다. 많이 울었으니 나 자신이 짠하다던가, 안쓰럽게 봐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좋은 기억을 갖고 살며, 좋은 면을 보려고 한다.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나쁜 기억, 힘든 일들, 되도록이면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안 좋았던 일들도 있게 마련이다. 안 보고 잊으려 해도 자꾸만 아프게 떠오르는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 조금씩 무뎌지고 화석처럼 변해가면 그 자리엔 한 가지만 남게 된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구나.' 부족한 걸 알면서도 쉬이 변하지는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게 된다. 


이곳에 있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얻은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생겼다. 얼마만큼 싫으냐면....  



당신은 그냥 1억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100억을 주고 당신은 10억을 받겠습니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낼만큼 찌질하게 싫었다.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대답은 전자다. 후자는.... 으... 생각만해도 괴롭다. 이런 쿨하지 못한 성격으로 집착하고 괴로워하면서 '공동체'라는 걸 7년이나 했다. 사랑을 받은 만큼 알게 모르게 미움도 받았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꼭 사회의 축소판 같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두루미'를 어떻게 기억할까? 거기에 수십 가지 모습의 내가 있다. 나의 불안, 나의 고통, 나의 최악도 물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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