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닉스 불나방 Sep 30. 2016

스쿨버스 납시오!

대통령도 멈추게 한다는 그 노란 버스!

오후 3시 15분,  

두 아이가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이다.

작은 아이는 Kinder라서 맨 앞줄 혹은 그다음 줄에 앉아야만 하고, 타고 내릴 때 부모가 꼭 있어야만 하는데 반해, 큰 아이는 4학년이니 내가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없으나, 다만 아이가 버스 내에서 까불거나 장난을 치면 않되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된다.  


제법 많은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이용해서 통학을 하는 것 같다.  아침에 탈 때 보면 우리나라 관광버스만한 크기의 버스가 거의 꽉 차서 학교로 가며, 노선 별로 버스의 수도 엄청나다.  스쿨버스를 타기 시작한지 한달 반이 지나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스쿨버스 타는 것이 재미있다보니, 아침에 버스를 놓치지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물론 버스를 놓쳤을 때 들어야 하는 나의 잔소리가 더 싫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이 아이들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나라인만큼 스쿨버스가 Stop 사인을 켜고 있을 때는 차선 불문하고 양방향 모든 차가 멈춰 선다.  스쿨버스가 정지해 있는데,  운전을 하여 적발되면 꽤 높은 벌금을 내야 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그런 운전자를 스쿨버스 기사가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도 미국에 오자마자 운전면허 시험을 봤을 때, 필기시험에 스쿨버스 관련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양방향 차 모두 서야 하는지, 주행하고 있는 해당 방향만 서야 하는지와 아이들 보행 사인이 있는 곳에서는 시속 몇 마일로 달려야 하는지 등의 문제였었고,  30문제 중 스쿨버스 관련 문제가 2개가 나왔으니 중요도가 매우 높은 편으로 다시 말하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서슬이 퍼렇다.  실기시험에서도 School Zone에서 제대로 속도를 지키는지 테스트를 하는데, 나의 경우에도 시속 15마일 기준을 잠시 잠깐 20마일로 달렸더니 여지없이 떨어뜨렸다.  떨어진 이유를 묻자 너의 운전은 훌륭했지만, 스쿨버스의 속도위반은 그 어떤 이유로도 봐줄 수 없다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받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림이 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통학차량에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아이들이 더 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문득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이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이곳에서는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가장 어린 나이가 한국으로 치면 6살이거나 7살인 반면, 사고가 빈번한 우리나라의 통학차량은 7세 이하, 그러니까 3, 4, 5세들이 주로 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차량이다보니 제 몸하나 가누는 것이 힘든 어리디 어린아이들인지라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어른들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갖는 의식 수준 또한 이 곳에 비하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기도 하고... 별일 없겠지 하는 무심함이 안일함을 만들고, 항상 사후 약방문처럼 사고가 나면 미친 듯이 떠들어 대고 법을 만들지만, 몇 달만 지나면 비슷한 사고가 또 이어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 스쿨버스를 처음 대하는 나로서도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 가장 의아했던 것은 스쿨버스 내에 좌석 안전벨트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갖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차에 타자마자 맬 것 같았는데,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아이가 타고난 이후에 창문을 들여다봐도 그렇고 안전벨트는 버스 안에 없다.  개인 차량을 이용할 때는 키에 따라 무조건 카시트를 써야 하고, 아이들도 습관적으로 차에 타자마자 벨트를 착용하는데 아이들만 타는 스쿨버스에 안전벨트가 없다니… 또한, 운전기사 외에 다른 도움 인력은 따로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학 중에 스쿨버스가 운전자 미숙으로 혹은 다른 어른의 잘못으로 사고가 나 아이들이 다쳤다는 기사를 들어본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시민들의 안전 의식이 철저하여 통학차량에는 절대 다가서지도 않는 사회적 합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실천에 옮겨지고 있어서 일 것도 같고, 스쿨버스를 탔을 때는 공공의 장소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안전을 저해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어려서부터 받아 아이들의 몸속 깊이 배어있어서 일 것도 같고, 운전기사의 각별한 안전운전과 철저한 아이들의 통제가 가능해서 일 것도 같다.  아니 사실은 이 모두일 것 같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말로만 떠드는 우리네 안전 의식과는 시작부터가 다른 것 같다.   사회 전체가 합의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이 곳 어른들의 생각과 태도를 우리도 얼른 닮아갔으면 싶다.  그래서 3살짜리 아이가 학교가는 바로 그 차에 치어 죽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하고, 그 고귀한 생명의 이름 '김세림'이 세림이법이라는 어른들의 수치스러운 단어로 불려지지 말았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밍고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