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도 밤도 색다른 로마의 매력속으로.
낮도 밤도 색다른 로마의 매력속으로.
낮도 밤도 색다른 로마의 매력속으로.
새벽 5:00.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이제 자연스럽게 새벽이 눈이 떠진다.
평소에도 일단 아침에 일찍 눈을 뜨고 보는 아침형 인간이지만 여행은 나를 더 부지런하게 만든다. 오늘은 로마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 이동경로를 잠깐 살펴본 다음 아침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다지 빡빡하지 않은 일정에 피로도 조금 쌓여서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잠을 좀 더 청했다. 꿀맛 같은 단잠을 청하고 나니 피로가 풀린다. 느지막이 준비를 하고 10:30 숙소에서 출발을 했다.
오늘 첫 번째 일정은 콜로세움. 콜로세움 옆에는 콘스탄티노 개선문이 있다. 콘스탄티노 개선문은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으로 로마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2년에 있었던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전투에서 승리를 했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를 다시 재건할 수 있었다고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때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을 파리로 옮기려고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다행스럽게 옮기지 못했고 대신 이 로마의 콘스탄티노 개선문을 모티브로 해서 파리 샹젤리에 거리에 있는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카투젤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와. 내가 파리 여행을 하며 봤던 개선문이 바로 이 로마의 개선문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이게 원조였다.
콜로세움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콜로세움은 8:30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조금 늦게 출발한 나는 엄청나게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예상만큼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30분 정도 줄을 서 있다가 입장권을 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 더 이른 시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어떨 때는 조금 애매한 시간에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면 비수기였기 때문에 관광객이 적었던 것일 수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가 자살을 한 후 황제로 등극한 베스파시아누스가 만들기 시작했다. 72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완공을 했는데 콜로세움은 로마 건축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네로 황제가 꾸며놓은 인공연못을 메우고 만들게 된 콜로세움은 원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 플라비안의 이름을 딴 '플라비아누스의 원형 경기장'이라는 뜻이었지만, '거대하다'라는 뜻의 '콜로세오'로 불리게 되었다.
콜로세움은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하던 경기장이었다. 이 거대한 경기장에서는 맹수 시합뿐만 아니라 서커스, 연극 등 다양한 공연들이 열렸고 검투사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기가 가장 인기 있는 경기였다고 한다. 검투사 대결은 노예만 하던 대결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 그리고 귀족들도 참여를 했던 결투였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무조건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고,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검투사들은 엄청난 몸값과 동시에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콜로세움의 건축양식이 아주 신기한 게 경기에 참여하는 검투사나 맹수들이 멋지게 등장할 수 있게 설계한 지금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의 흔적이 지하 바닥에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거대한 경기장에 출입 시스템도 아주 완벽한데 5만 명의 군중이 입장하는 데는 30분, 퇴장할 때는 겨우 15분밖에 걸리지 않도록 아주 철저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층마다 출입구가 아주 많이 있었고 층을 연결하는 계단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콜로세움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경기장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벽돌, 큰 바위들을 지고 날랐을 노예들, 그리고 아무리 서로를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고는 하지만 영화에서 봐왔던 검투사들의 대결, 맹수들의 포효,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웃고 즐긴 귀족들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콜로세움이 지어진 뒤 노예들을 데려와 검과 방패, 갑옷을 주고는 단기간에 훈련을 시켜 노예들끼리 싸우게 하고, 귀족들끼리 노예가 맹수에게 몇 분만에 잡아먹히는지, 살아남는지 내기를 하며 그걸 바라보며 즐겼다고 하니.
포로 로마노는 2000년 전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입법, 사법,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가 점점 더 부강해지고 대대적인 배수 공사에 들어가고 건축을 통해 로마 생활의 중심지이자 로마제국의 중심지로 떠오른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 연설하고 토론하는 공공의 장을 뜻하는 "포럼(Forum)"이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포로 로마노를 더 피부 깊숙이 느끼기 위해서는 미리 로마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사실 이런 세계사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일단 그냥 유명하다고 해서 보러 갔는데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다른 중세 유럽 시대의 거리들처럼 건물이 예쁜 것도 아니고 고대 로마의 모습이기 때문에 웅장하지만 투박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내 눈에는 그냥 유적들이 다 부서져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
알고 보니 5세기경 로마가 분열하고 중세를 지나면서 이곳에 있던 신전과 공공건물의 대부분이 교회를 짓거나 집을 만드는데 재활용되어 많이 훼손된 것이라고. 또 로마의 테베레 강이 1000년 동안 계속 범람하면서 유적의 대부분이 토사로 덮여버렸고 20세기에 들어와서 국가 차원에서 발굴을 시작해 지금까지 복원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포로 로마노가 내 눈에는 그냥 건물이 다 부서져 있는 것처럼만 보였으니.
베네치아 광장 정면에 있는 이 거대한 흰색 건물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를 통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보기에는 마치 대단한 건물처럼 보여서 나도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는데 이것은 로마 시민이 뽑은 최악의 건물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을 지을 당시에 각종 부조리로 인해 부실 공사가 되었고, 거대하고 하얀 색상 때문에 주변에 있는 유적이나 로마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렇게 베네치아 광장이 쫘악 펼쳐져 있다.
확실히 주변의 건물들과는 대조되게 색깔이 튀긴 하는 것 같다.
11월이라도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로마는 덥다.
잠깐 계단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도 바라보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땀도 식히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나가 나는 근처에 있는 파스타집을 하나 찾아서 그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pastario'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곳곳에 있는 체인점이었던 것 같다. 안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살펴보다가 9.5유로짜리 4치즈 파스타와 3유로의 사이다를 주문했다. 4가지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라고 해서 엄청 기대를 했다. 원래 치즈라면 껌뻑 죽는 나였기에. 파스타가 나오고 한 입 먹었는데 음 뭔가 꼬릿꼬릿한 맛의 파스타였다. 양은 또 엄청나게 많아서 한 3분의 1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으로 열심히 찾아간 곳은 트레비 분수.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답게 트레비 분수에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트레비'는 삼거리를 뜻하는 '트레 비에 Tre Vie'에서 따 온 것으로 해석을 하자면 삼거리에 있는 분수라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탄산수 '트레비'는 그럼 '삼거리'라는 뜻이겠지. 로마 사람들이 보면 왜 탄산수 이름이 '삼거리'일까라고 생각을 할 수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많은 것 같다.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라오스의 맥주, 라오비어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Lao Beer'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사서 요긴하게 입고 다녔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HITE'나 'CASS'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닌 것과 똑같다.
엄청난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나도 카메라에 나와 트레비 분수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혼자 여행을 할 때 안 좋은 점을 한가지 꼽으라면 바로 이런 경우. 배경과 내 모습을 함께 담고 싶지만 혼자 셀프 카메라로 찍어야 하니 나는 엄청나게 크게 나오고 배경은 극히 일부만 프레임에 잡히는 것. 그렇다고 카메라를 아무한테나 맡기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에 로마는 위험한 곳이었느니 이 정도에 만족을 했다.
트레비 분수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로마제국 시절 애인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동전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분수를 등지고 동전 하나를 던지면 언젠가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동전을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분수의 바닥에는 전 세계의 동전들이 던져져 있다. 이 동전들은 국제 빈민 구호 단체에 보내는 기부금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전설을 따라 동전을 던져볼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저 당시에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기 때문에 동전 한 푼, 두 푼이 소중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로마를 갈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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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계단에 앉아 젤라또를 먹는 장면이 나와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은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아니 근데 로마에 웬 스페인 광장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계단 위에는 성 삼위일체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을 만든 사람이 프랑스인이라서 프랑스인들은 이 계단과 광장을 '성 삼위일체 계단과 광장'이라고 부르고 스페인 사람들은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스페인 계단과 광장'이라고 서로 경쟁적으로 불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짧아서 부르기 쉬운 '스페인 계단과 광장'이라고 부르면서 이 명칭으로 굳어졌다고. 역시 나랑 뭔가 통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스페인 광장을 아래로는 명품 브랜드들이 쭈우우우욱 늘어선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정말 끊이지 않는다. 정말 모든 명품 브랜드들을 다 본 것 같다. 한 가지 또 재미있는 건 이 명품 브랜드와는 어울리지 않게 가게 앞에서 만득이 인형을 파는 잡상인이 정말 많다. 만득이를 아는가? 그 옛날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던 그 만득이 인형 말이다. 그들은 샤넬, 루이비통 같은 매장 앞에서 만득이를 땅에 던졌다 잡았다 하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만득이의 폭신폭신한 질감에 반해 2유로나 주고 만득이를 사는 외국인들도 종종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왜 그걸 팔고 또 그걸 사는지 의문이다.
스페인 광장에는 내 사랑 폼피 매장이 있다. 내일은 남부 투어를 떠나기 때문에 로마에서의 일정은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그 마지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또 폼피를 먹기로 했다. 4유로가 주는 이 달콤한 행복. 정말 감동적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한 숟가락 한 숟가락 깊이 음미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 내 숙소는 떼르미니 역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틀 뒤에는 피렌체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떼르미니 역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의 구간권을 예매했다. 구간권 예매는 10유로. 이탈리아는 도시 이동을 할 때 꼭 구간권을 미리 예매를 해야 하니 잊어서는 안된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저녁을 먹고 야경투어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밥을 해주시던 이모님이 저녁 8시에 무료 야경투어가 있으니 밥 먹고 시간 되면 한번 가보라고 하셨다. 숙소에서 만난 동생 한별이와 함께 우리는 야경투어를 가기 위해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로 픽업을 온다는 이모님의 말을 듣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8시가 되었는데도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장님께 가서 물어보았더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서 8시에 출발을 하는 거라고!!!!!
아악. 우리는 너무 황당했지만 일단 늦어도 성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까지는 도보 10분!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하지만 어두운 밤에 처음 가는 길이라 헷갈려 하며 혼비백산 달려갔더니 성당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우리도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달려갔다.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남자 가이드가 우리가 측은해 보였는지 챙겨주기 시작했다. 트램을 타고 시작된 야경투어는 낮에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중심으로 투어가 진행되었다. 천사의 성, 나보나 광장, 판테온을 둘러보았고 가이드는 특유의 억양으로 이곳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천사의 성은 로마 황제의 무덤인데 중세에는 요새로도 쓰이고 한때는 교황의 피신처로도 쓰였다고 했다. 중세 시대에 유럽에 한참 페스트가 퍼질 때에 교황이 이 성을 지나가다가 대천사장 미카엘이 성 위에서 칼을 칼집에 넣는 환영을 보고 페스트가 물러갈 것이라고 공표를 했는데 실제로 그 후에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성 위에 천사상을 세웠지만 몇 번이나 벼락을 맞아 천사 상이 손실되었고 나중에는 피뢰침을 달아서 함께 저 성위의 천사상을 세웠다고 한다.
가이드는 설명을 마치고 우리에게 작품 활동을 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지만 그가 말한 작품 활동은 바로 사진촬영 ㅋㅋㅋㅋㅋㅋ. 그렇지 작품 활동이지.
한 100컷 찍고 1컷 겨우 건지는 작품 활동을 우리는 곳곳에 퍼져 열심히 해대기 시작했다.
나보나 광장은 로마의 현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광장이었다. 광장의 중앙에 있는 피우미 분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분수는 베르니니가 만들었고, 서쪽의 성당은 베르니니와 라이벌이자 앙숙이었던 보로미니가 설계를 했다고 한다. 이 두 건축물은 서로 마주 볼 수밖에 없는데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의 가운데 조각상은 성당을 보기 싫은 베르니니의 마음을 담아 얼굴을 가리고 있고, 성당은 분수에서 약간 비켜 세워져 있는데 이 모습이 굉장히 유치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우리도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경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판테온'.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고 한다. 판테온은 그리스 수학과 로마의 건축기법이 합쳐진 최고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건축물이다. 이 웅장하고 거대한 신전은 돌과 석회로 만들어졌는데 신기한 것은 철근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기 위해 판테온의 돔을 연구하면서 "천사가 설계한 것 같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지금도 판테온 건축의 비밀을 풀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위대한 건축물임은 정말 확실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판테온 주변에 나와있었다. 그들만의 금요일을 즐기고 있는 거겠지.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부터 친구, 연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로마의 밤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식적인 투어가 끝이 나고 로마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들을 가이드는 더 설명해주었다. 낮에 봤던 트레비 분수의 야경도 멋지기 때문에 가는 방법도 설명해주었지만 우리는 이미 낮에 봤고 무엇보다 야경투어를 놓칠까 봐 전속력으로 달려오느라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때 가이드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숙소 가는 방법을 몇 번이나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대충 알겠다고 대답을 했는데 가이드는 계속 표를 사는 방법부터 트램 번호, 타는 방향, 펀칭하는 방법까지 계속 설명해주었다. 자꾸 자기 느낌이 쎄하다며 어린이가 아니니까 잘 찾아가야 한다며. 아마 처음부터 위치도 잘못 알고 늦게 찾아오고 투어 내내 가이드 뒤에 딱 붙어서 열심히 끄덕거리며 설명을 듣던 동글동글 단발머리 여자 두 명이 자신의 눈에는 어리고 서툴러 보였겠지.
난 속으로 생각했다. 서툰 건 맞는데 결코 어리지는 않다며.
아마 자기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덕분에 무사히 숙소도 잘 찾아왔고 우리는 씻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내일은 진짜 로마의 마지막. 남부 투어를 떠나야 하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도 잘 하고 아침도 많이 먹고 떠나야지. 또 좋은 동행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