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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Jul 23. 2017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이불킥

능력은 없고 패기만 가득하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

이직을 위해 진행했던 여러 면접 중에 절대 잊지 못할 면접이 하나 있다.

인터뷰의 형태도 그랬고, 두 번 다시 없을 일들이 한 면접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면접은 불과 첫 직장에 입사하여 일한지 9개월이 채 안된 때 일어난 일이다.


첫 직장에서 막 꼰대(?)와 성희롱과 싸워 나갈 때, 입사한지 갓 7~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직장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다시 시작하더라도 어린 나이였기에 경력을 포기하는 것에 크게 부담은 없었다.

다만, 신입으로 재입사하더라도 이전 직장을 다닌 7~8개월의 공백기를 자기소개서에 담을 자신이 없어 어딜 지원하든 항상 이전 직장 기록을 작성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입사 후 3개월 만에 하반기공채에서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 지원한 때 서류합격을 할 정도로 짧은 직장경력은 신입으로 다시 들어가는 데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여느 날과 똑같이 채용 정보를 찾고 있던 날들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그리고 내가 겪었던 직장 내 불합리함을 가족들과 공유해왔기에, 가족들도 내 구직을 응원해주고 있었고 좋은 기회가 보이면 추천도 해줬다.

그 중 정말 핫한 기업이 있었는데 이전 직장에서 내가 지금껏 해온 일과 전혀 무관한 직무에 경력 무관으로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가 떴다.

친언니의 가장 친한 친구도 같은 팀은 아니지만, 같은 부서(실 규모의)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 언니도 이전 직장에서 무관한 직무에 6개월만 다니고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력을 인정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그 회사의 직무에 맞게 내 경험들을 재단했고, 이력서를 빠른 시일 내에 제출 했다.


지원서를 낸 지 2주 후, 갑작스럽게 모르는 번호를 통해 전화가 왔다.

내가 지원한 그 '핫한 기업'의 인사팀이었다.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 면접 당일 갑작스런 피부염 때문에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고 면접장소로 향했다.


면접에서 몇 분간 대기 후 안내된 면접장소는 꽤나 문화충격을 안겨다 줬다.

나 혼자에 면접관 6명이서 면접을 보았는데, 그 중 2명은 타지역에서 화상채팅으로 면접에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99627


면접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였지만, 처음 보는 장면에 당황함을 애써 감추며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부터 나는 뭔가 조금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 화면 너머의 면접관 : 직장 다니고 계신 중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면접 보시려고 반차 내셨나요?
- 나 : 아니오. 피부염 생겼다고 하려고 2시부터 팔을 긁다가 팀장님께 팔 보여드린 후 병원 간다고 말씀 드리고 조기 퇴근 했습니다. 지금도 조금 그 부분이 발갛네요. 화질이 조금 안 좋긴 한데 보이시나요?
- 화면 너머의 면접관 : 아;;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면접에 임하게 되었는데, 롤플레이 면접을 진행했다.

은행권 면접 이후로 영업직이 아닌 이상 롤플레이 면접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해서 이 때도 조금 당황했지만, 오히려 유관 직무가 아닌 곳에 지원했기에 예상 질문들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고 면접을 임하게 되었던 터라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면접관 6명 전부에게 내가 role을 부여해야 했던 터라 이래저래 역할을 부여하다 생각이 나질 않아 몇 분 께는 맥락과 상관 없는 서기, 기자재 담당 등을 역할로 부여하였다.

진지해야 할 롤플레이 면접에서 PM이었던 내가 계속해서 실수를 남발하자 이상하게도 분위기는 갈수록 화기애애 해져갔고, 어느순간 내가 정신차려보니 면접을 보고 있단 사실을 까먹고 캐주얼하게 그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롤플레이 면접을 거의 1시간 보고 나서, 인성면접으로 돌아왔다.

그 때 결정타가 날라왔다.


- 화면 너머의 면접관 : ㅇㅇ씨, ㅇㅇ씨는 꿈이 무엇인가요?
- 나 : 꿈..이요...?
- 화면 너머의 면접관 : 네, 정말 추상적인 것도 되고, 그냥 구체적인 꿈이어도 상관 없어요. 본인이 이루고 싶은 것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때 나는 내가 원래 하고 있던 일과 전혀 다른 직무를 지원한 거에 대한 의중을 묻는 질문이라 생각했지만, 선뜻 뭐라 대답해야 할 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얕은 지식으로 아무리 면접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전혀 준비하지 못한 뜻밖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워 하는 내게 면접관들은 '정말 어떤 꿈이든 상관 없고, 다만 내 가치관이나 생각을 묻고 싶어서 큰 의도 없이 묻는 질문'이라며,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본인의 1차적인 목표를 얘기해도 상관없다'고 나에게 대답하기를 재촉했다.

나는 그래서 전혀 상관 없는, 마음 속에 담아왔던 내인생의 꿈을 대답하였다.


- 한강 보이는 집에서 사는 거요.


빵!


다들 말 그대로 빵 터지는 바람에 (몇 명은 책상에 엎드려 흐느끼는 정도..) 나는 구차하게 부연 설명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가마솥 더위로 유명한 분지에서 살다 보니, 물 구경을 너무 못하고 자라왔고 그래서 물이 보이는 곳에서 사는 게 인생 목표라며 구구절절히..

그 자리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한강은 길다, 그리 이루기 힘든 꿈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대충 수습하고 인터뷰는 어느정도 다시 형식적인 질문들로 끝이 났다.



그러고 2일 후, 다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interviewer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따로 보고 싶다며 전화를 해 왔다. (이성적인 호감 이런 것 때문에 따로 전화온 게 아니라, 인터뷰에 대한 리뷰 목적으로 따로 전화를 했다.)

interviewer 두 명은 내게 그 날의 면접 때 내가 보여준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였으며, (내가 얘기한 부분 외적으로도 전부) 나와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아쉽게도 나 외의 다른 면접 대상자들이 14명 정도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경력직이었다는 이야기를 공유해줬다.

그러고 10년차 정도 되는 경력자 2명과 나를 최종에 올릴 예정인데, 금번 면접에서 확실히 못 보여줬던 부분들을 다시 한 번 더 고민해 보라는 조언을 같이 해줬다.

그들의 조언 중엔 내가 원래부터 경험해왔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지원한 직무에 대해 어떠한 유관 경험들을 쌓아왔는지, 어떠한 부분에서 업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좀 더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들을 부각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특히 주류였다.


하지만, 그 부분은 이전 직장에서 내가 한 경험이 어떻게 금번 직무에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지 어필할 얘기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학문적으로나, 현업적인 지식이 짧았기 때문에)

그래서 최종에서 위 질문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앵무새 같이 똑같은 대답만 하는 것 빼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고, 더 나아간 답변을 바랬던 면접관들의 니즈에 부합하지 못해 최종 면접에서는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똑같이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것' 이라고 똑같이 대답하여 interviewer들을 빵 터트린 건 안비밀)




곱씹어보면 나에게는 흑역사나 마찬가지였던 면접 경험이었지만, 면접에서 잠깐이나마 느꼈던 회사의 분위기와 면접 이후에 다시 한 번 나를 만나고 싶어했던 직원들 처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인상 깊었다.

그러한 회사에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졌던 게 참 감사했고, 다른 기회를 통해서라도 그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실은 다른 직무로 여러 번 지원했는데, 실패함..)

그래서 이 경험은 내가 무식하여 오히려 용감했던 흑역사였지만, 한 편으론 나에 대한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 받은 것 같아 뿌듯하게 이불을 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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