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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Mar 06. 2018

#METOO 운동에 동참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언제나 당신의 편

처음 미투 운동을 봤을 때는 '터질 게 터졌네'란 생각이었다.

하나 둘 유명인사의 이름이 거론 되고, 그들이 행한 행위에 대한 고발이 자극적으로 기사화 될 때는 역겨운 기분에 속에서 욕지기가 일어났다.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 하나 없는 기분이었다.

그 결정타는 어제를 뜨겁게 달군 정계의 미투운동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피해자의 굳어있던 표정, 불안한 눈빛,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그 태도에 마음 속의 뜨거운 게 들끓었다.

잘못한 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데 왜 피해자는 항상 그 잘못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아야 하는 건지, 왜 항상 가해자는 똑같은 레퍼토리의 변명으로 일관하며 오히려 떳떳해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임을 숨긴 적이 없다.

반대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굳이 안 해도 될 말인데 성폭력 피해자임을 드러낸 적도 없다.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공유하고 조언을 해 주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함으로써 괜한 동정을 사기 싫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떳떳하지 못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못마땅했다.


기분 나쁜 성추행을 당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일상적인 성폭력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나는, 미투 운동에 동참함으로써 피해 사실을 공개한 것 만으로 벌벌 떠는 피해자들에게 지지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단순히 '나도 당했어요' 라고 목소리 내기 보다는, 피해자로서 나도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큰 용기를 낸 그들에게 옆에서 묵묵히 지지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내 미투 운동은 #METOO이자 동시에 #WITHYOU의 목소리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용기는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 보다, 이전 직장의 사람들과 연결된 공간에서 그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도 이전 직장 동료와 친구로 남아 있는 내 소셜계정에 소신껏 미투 발언을 했다.

그들의 행동에 과거의 나는 분노했었고, 허탈감을 느꼈다는 걸.

그 분노와 허탈감을 표현하는 글을 적고 되내일 때는 마음 속 깊은 응어리에 눈물이 맺히도록 사무쳤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안부 인사를 받았고, 여러 #withyou 코멘트를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든든했다.


수많은 미투 운동을 외로이, 그리고 연대해서 하고 있는 그들에게 실날 같은 메시지라도 닿도록 전해 주고 싶다.

당신들의 고독해 보이는 싸움에도 묵묵히 옆에서 당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 또한 당신을 지지합니다.

I ALWAYS BE #WITHYOU


- 아래는 나의 미투 발언 전문 (이미 브런치에 적은 글들의 요약본이기에, 다시 안 봐도 상관은 없다.)

#METOO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수도 없이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며 용기 내서 글을 쓴다.

이전 회사를 나와야겠다 결심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도 한 몫 했었다.
그 때 사내 성폭력 건을 처리하면서 엮인 직급자 중에 가정이 있고 보살필 사람이 있음에도 그런 일을 저지른 가해자보다 피해자인 나를 더 배려하고 생각해준 사람은 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거꾸로 그들은 술 먹고 어쩌다 한 실수에 본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는지 가해자의 위치와 가해자의 처지에 더 많이 공감했고, 그랬기에 나는 그런 가해자의 안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열쇠를 쥔 위협적인 존재인 것 마냥 인식되었다.
그 결과로 나는 옮긴 팀에서도, 옮긴 조직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인 걸 내 의지가 아닌 채 다 떠벌려졌고, 심지어 회사를 옮길 때도 이전 회사의 직책간부는 내가 옮긴 회사의 직책간부에게 내가 성추행 사실을 인사팀에 고발했단 이유로 나를 ‘성 관련 문제에 민감한 아이’로 만들어 은근슬쩍 지금 회사의 직책간부에게 겁을 줬다. 가해자보다 내게 사내 성폭력이란 주홍글씨가 더 따라다니고 괴롭혔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분하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럴려고 사는 건가 싶어 혼자 엉엉 울었던 날도 많았고 이런 더러운 꼴 보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게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사실에 내가 물고 태어난 수저를 탓하다가 그런 내자신이 한심해서 더 분해 하기도 했다.  

이런 어두운 기억을, 불쾌하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다시금 꺼낸 이유도 내가 겪은 일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미투운동을 보면서 나보다 수위 높은 일을 당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낸 목소리를 통해 다시 기억하기 싫은, 치욕스럽고도 비참한 일들을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으로 성토한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미투운동에 대해 그 추한 민낯을 고발하는 데스크가 그들의 백업업무를 지원하는 뒷단의 오피스 데스크와의 온도차가 크지 않은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로 권력형 성폭력의 그 추한 민낯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은 응당한 처벌을 받아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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