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높은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는 정통 Salon보다 조금은 '싸'구려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에 '살'롱이 아닌 '싸'롱입니다.
탱자탱자 쉬고 놀면서 적당한 인문학적 통찰과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유쾌한 지적유희를 만끽하는 곳, 낭만과 여유속에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이 있는 곳,
탱자싸롱은 그런 곳이 되길 원합니다.
2013년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 민박을 오픈하면서 네이밍에 담긴 의미와 꼼수에 관해 끄적여 본 글이다. ‘밍기적’이나 ‘뒹굴’처럼 왠지 느리고 게을러 보이는 순우리말 단어 중 ‘탱자탱자’를 일찌감치 골라 놓은 후, 당시엔 낯설지만 지금은 간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살롱’과 결합해 민박집 이름을 완성했다. 하찮고 쓸모 없이 뒹굴뒹굴 노는 모습을 ‘탱자탱자’라고 하는 걸 보면 역시 그 어원은 탱자나무에서 온 게 틀림없다.
橘化爲枳(귤화위지),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중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회수(淮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의 토양이나 기후가 크게 다른데, 귤을 회수 이북에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해 탱자처럼 조그맣고 딱딱해진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즉 같은 사람이나 사물도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성질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다분히 탱자를 깔보는 듯한 이런 표현에 반기를 들련다. 회수(淮水)보다 훨씬 장대한 남해 바다를 건너 제주에 정착한지도 만6년. 방위상으론 귤이 되야 마땅하지만 난 여전히 탱자로 살고 있다. 사실 탱자는 제주이민자들의 삶을 쏙 빼 닮았다.
탱자는 얼핏 하찮다. 보기엔 좋아도 먹지 못하니 경제적 가치가 덜하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육지의 삶을 버리고 이 곳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자칫 ‘루저(Loser)’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곳 제주의 많은 이주민들이 경제적으론 넉넉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 단지 부족한 재화를 풍족한 마음으로 채워가며 고만고만하게 만족하며 살아가고들 계신다.
탱자는 열매보단 가시 돋힌 무성한 줄기로 인해 울타리 대용-특히 과거 귀양 온 인물을 위리안치 형벌로 집안에 가둘 때-으로 그나마 그 쓰임새를 인정받곤 한다. ‘괸당문화’로 알려진 지역민들의 텃세로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이주민들이 종종 있다. 남해를 넘어온 ‘육지것’들 중 현지인들과 잘 어울려 ‘반귤반탱’으로 소프트랜딩에 성공하신 분들도 있지만 탱자나무 본연의 쓰임새답게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시는 이주민들도 꽤 많다. 나 역시 이웃들과 잘 지내는 편이지만 몇 십 년을 쌓아 온 나만의 울타리를 굳이 허물고 싶진 않다.
탱자들은 대개 4차원이다. 화려한 육지를 마다하고 제주에 왔단 사실만으로 일단 4차원 기질이 내재해 있는 거다. 대도시에서 오랜 기간 살아 온 일반적인 사람들은 4차원형 인간을 단번에 알아본다. 문제는 4차원들끼리 만났을 때다. 4차원이 4차원을 만나면 대개 본인은 정상이고 상대방이 4차원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하거나 ‘내 과가 아니다’라며 마음의 문을 닫곤 한다. 나 역시 과도하게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몇몇 개성강한 농익은 탱자들을 만나면 왠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귤보다 탱자가 좋다. '하찮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대개 예술적 촉이 좋기 때문이다.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인격과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새 詩가 튀어나오고 예술적 영감이 샘솟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술이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통섭하는 지적유희를 나는 사랑하고 즐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역시 그런 ‘하찮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 난 트렌드일 거라 확신한다.
대표적 탱자형 인간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글을 쓸 때 먼저 이야기가 있고 나중에 제목을 붙이기 보다는 먼저 틀을 만든 후 '음, 이 틀 속에 어떤 얘기가 들어갈까?'를 생각한다고 한다. 즉 '말장난'에서 소설을 풀어내려고 한단다. 글을 쓰는 동안 저절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쓰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형태를 띠지 않았던 것이 서서히 제대로 된 형태를 띠어간다는 거다. '처음부터 이걸 써야 해'하는 사명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문학에서는 자연스러움 역시 사명감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저술태도에 왠지 공감이 간다.
한편, 이런 거장의 사고방식은 나 같은 천둥벌거숭이 작가지망생들한테 은근 희망 같은 걸 불어 넣는다. 지금 쓰는 글 역시 민박 홍보용으로 그냥 '탱자예찬'이란 제목부터 써넣고 탱자를 훌륭한 놈으로 보이게 할 만한 에피소드들로 살을 채워나갔는데,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단순히 '탱자가 좋다'를 넘어 '예술가가 되려면 탱자를 닮아야 한다'란 정말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선명해 졌으니 말이다. 삼천포로 빠져야 좋은 글이 나올 때가 있다니, 세상 참 재밌다.
흔히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사용하는 방법이나 관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그러한 재능을 계발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 할 뿐이다.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이 곳 제주에서, 게으른 탱자의 시선으로 삶의 곳곳에 감추어진 예술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발견해 보려 한다. 그것만이 줄어드는 삶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고 낯선 제주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Art는 동사다. 탱~자!
제주돌집 탱자싸롱
2~3인실 자쿠시 독채탐라
4~5인실 바비큐 독채한라
*예전 탱자싸롱 게스트하우스가 야외 욕조를 갖춘 테라스가 있는 자큐시 독채탐라와 야외 바비큐장을 갖춘 바비큐 독채한라로 재오픈했습니다. 원년 마담(=민박주인)인 제가 직접 운영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