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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ug 19. 2023

[기러기의 일기 20]

내 거, 하자

아내가 친정 부모님, 처제와 함께 새 집으로 입주한 지 보름이 지났다. 난 아직 방문을 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간간히 찍어서 보내주는 사진들을 볼 때마다 얼른 가보고 싶다. 새 집. 우리 부부에게 참 남다르게 다가온다.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떠나 나와 함께 중국에서 신혼을 시작한 아내에게는 더 의미가 깊지 싶다. 결혼하면서 집도 혼수도 장만하지 못했었으니까. 넉넉지 않았던 우리의 결혼 예산 안에서 a.k.a '체리 피커' 아내가 열심히 찾아 저렴하게 진행한 스드메. 게다가 예식장도 정말 운 좋게 하고 싶었던 장소에 빈 날짜와 시간이 생겨서 정상 가격보다 저렴하게 잡았었다. 솔직히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다면 금전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외에 나와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우리에게 그저 멀기만 해 보였던 청약 당첨이라는 행운이 따라줬다. 외벌이 부부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우리 집 CFO 아내덕에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나가고 있다. 이제 갚기 시작하는 은행빚은 그 끝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올 상반기 연휴에 한국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새 집에 들여놓을 가구와 가전들을 둘러보는데 정말 감회가 남달랐다. 아내와 다시 한번 결혼하는 느낌이랄까? 하하. 새 집과 새 가구, 새 가전들을 떠올리며 아내와 손잡고 박람회나 몰 구경을 하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미안함, 고마움, 설렘, 책임감 등등. 나 없이 혼자 입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식탁을 마지막으로 가전과 가구들이 모두 들어왔다. 아내는 잘 고른 것 같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처제, 아내까지 넷이서 살기에 조금 좁은 느낌이 든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더 큰 집은 애초에 무리였기에 그래도 집이 넓게 잘 빠졌다며 아내를 다독였다. 가전, 가구들이 다 들어왔으니 이제 입주는 다 마무리된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나의 단순함이 불러온 성급한 판단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문제는 바로 '하자'였다.




아내는 입주 전 하자 점검을 받고 크게 낙담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화가 좀 났다. 하자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비싼 집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경을 더 써서 조금 더 완벽하게 시공을 하거나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규 분양 아파트에 얼마나 하자가 많으면 입주인들을 위한 하자 점검 전문가가 이렇게나 많이 생겼을까. 하자 점검 전문가분들이 안 계셨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하자들이 많아서 당연히 페이를 하고 고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리고 입주 후 시작된 하자보수. 하자가 많아서 정말 매일같이 사람들이 드나든다. 아내는 정말 대단하다. 그 많은 일과 문제를 혼자 처리하고 있다니.. 내가 혼자였다면 해낼 수 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이 싫어서 모든 걸 혼자 고치려고 하는 내 성격에? 글쎄.. 아니올시다.



그렇게 보름이 넘게 하자보수와 인테리어 마무리(줄눈 시공, 냉장고장 등)가 진행됐고, 이제는 정말 끝이 보인다. 그리고 정말 정말 타이밍이 알맞게도 열흘 정도 후면 아내가 시험관 배아 이식에 들어간다. 그 힘든 입주 준비와, 이사, 하자 보수 등을 혼자 다 처리하면서도 난임 클리닉에 다닌 이래로 가장 좋은 채취 결과를 받아낸 아내였고, 바로 그 최상급 동결 배아를 이식할 예정이다. 여러모로 참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우리 부부인데, 정말 이번만큼은 새 집에서 우리 아기가 잉태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고생한 우리 아내를 위해서. 더이상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은 우리 부부를 위해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싶은 내 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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