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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Nov 25. 2023

[기러기의 일기 24]

I'm counting stars

만으로 10년 그리고 한 달 남짓. 해외에서 지낸 시간이다. 꿈이 있었다. 목표가 있었다. 다가가고 멀어지고,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렇게 버텼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만으로 5년 그리고 열흘 남짓. 아내와 결혼하고 지난 시간이다. COVID와 난임으로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을 떨어져 지냈다.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렇게 버텼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나름 힘겨운 상황에서도 날 믿고 결혼해 준 아내와 어렵게 어렵게 찾아와 준 아내 뱃속의 태아를 생각하며 무너져가는 멘털을 가까스로 부여잡았고,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이미 무너졌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왔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건 그럭저럭 살아내고는 있었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얼마 전 본사에서 출장 온 이사님과의 개인 면담을 통해 나의 현재 상황, 회사에 대한 요청사항, 복지나 처우 관련 건의사항 등을 이야기했다. 본사에 있을 때 직속상관이었던 분이기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그에 대한 회사 차원에서의 피드백이 있었다. 피드백은 '간단명료'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시던가.' 하는 식이었다.


청천벽력.

마른하늘에 날벼락.


실적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는 주재원 업무 특성상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성과는 없지만 나름 10년을 일하며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끔 불만이 쌓일 때면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이 든 적은 있지만. 피드백을 받고 든 생각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이렇다.


'뭐? 말이야 방귀야?'


'역시 모든 실적과 성과를 가져가는 본사 입장에서 주재원의 노고를 생각하는 정도는 고작 이 정도구나.'


예전 같았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나다. 다른 기업의 주재원 복지와 비교하며 전투력이 급상승했을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분하고 냉정했다.


'그래. 그들 입장, 그들 시선으로는 그렇게만 보이겠다.'


'열심히 한들 계속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바뀌지 않겠구나.'


'중이 떠날 때가 됐구나.'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고, 머리는 꽁꽁 언 얼음보다 차가웠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자신과 회사의 모토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사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결국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배와 주머니를 불려주고 있었나 보다. 몰랐던 사실은 아닌데 새삼 다시 와닿는다.


비오의 노래 Counting Stars의 가사가 맴돈다.


Counting stars

밤하늘의 펄

Better than your Louis Vuitton


그리고 그 가사를 살짝 손본다.


Better than your two-year-old grandson's Hermes


올 초 아내와 갔던 제주 여행에서 봤던 밤하늘의 별을 떠올린다.

그리고 진주같이 은은하게 빛나는 별을 센다.


다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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