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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람 Jul 24. 2020

절망의 밑바닥까지... 더는 내려갈 곳이 없을때

서른은 아직도 꿈을 향해 달려갈 나이

2017년 4월에 종방한 〈K팝스타 시즌6〉를 즐겨봤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시즌6에서는 “더 라스트 찬스”란 부제 하에 이미 데뷔를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이나,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의 결과를 냈던 참가자들이 나와 더욱 열띤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스타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내 시선에서 본 이 프로그램의 세 가지 키워드는‘경쟁과 평가 그리고 기회’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우승으로 향하는 관문이 좁아지면서 ‘살아남는 자와 떨어지는 자’가 정해진다. 같은 목표, 같은 꿈을 가진 참가자들끼리 무대를 함께 준비하며 서로 자극이 되고, 새로운 미션 아래 자기 역량을 향상시키며 보람도 있었겠지만,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도 엿보였다.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 전원을 일렬로 세워놓고, 지정된 노래를 부르게 했다. 혼자 부르면 잘 구별되지 않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면 각 지원자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나거나 실력 또한 확연하게 구별됐다. 이들 모습에 내 인생이 비쳐졌다. 


치열한 경쟁 끝에 꿈을 이루는 사람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한창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나의 스물아홉이 생각났다. 그해 3월, 해외에 취업하기 위해 4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고 입사한 외국계 회사에서는 적어도 두 달 이상 해외연수 경험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했고, 늘 외국생활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월급을 모아 저축해둔 돈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곤 했지만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거주자로서 그 나라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학연수를 가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해외로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외국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기’란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은 참 좋았다. 다시는 그곳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원한 해방감과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자유가 느껴졌다. 

나는 그해 안에 해외에 취업해서 서른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기에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내 나이 곧 서른이었기에 더욱 간절했다. 영어 학원을 두 군데 끊고, 같은 쪽으로 취업하기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터뷰 스터디를 했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는 싱가포르였다. 한적하면서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국가에 완전히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이십대 때 경험했던 호텔 코디네이터가 떠올라 싱가포르에 있는 특급호텔에 경력직으로 취업할 계획을 세웠다. 호텔 코디네이터도 종류가 많지만 조금 막연하긴 했다. 사무실 서류작업을 메인으로 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정도 일하다가 그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계속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돌아와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생각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경력도 있으니 면접준비만 잘 하면 곧 취업할 수 있으리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했다. 

드디어 그해 여름,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1차 서류전형, 2차 그룹면접, 3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최종인터뷰까지 올라갔다. 면접마다 간격이 있어서 총 면접기간은 두 달이 넘었다. 마음은 이미 싱가포르에 가 있었고‘내 인생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기대하며 하늘을 걷는 듯한 들뜬 마음으로 매일을 보냈다. 이미 친구들에겐 나의 합격소식을 전했다. 앞으로 싱가포르에서 살게 될 거라고.

곧 최종면접을 보았다. 분위기가 좋았다. 외국인 면접관들은 나의 지난 경력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또 환대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자신감이 붙어 그동안 준비해간 면접용 답변들을 막힘없이 술술 뱉어냈다. 면접은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모든 질문에 충분히 답한 후, 좋은 분위기 속에서 “See you later”를 연발하며 나왔다. 그러나 불안함 때문이었는지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 남아있었다. 이후 합격소식을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을 보내며 기대 반 불안감 반으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그때는 왜 직접 메일을 쓰거나 전화를 해서 합격여부를 확인해볼 생각을 못했을까. 어떤 날은 기다리는 거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전화기만 붙잡고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금방 눈을 뜬 거 같은데 다시 밤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진이 빠진 상태로 한 달을 더 기다리며 여름을 보냈다.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잡고 다시 면접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다섯 번의 면접을 더 봤고 거침없이 올라가다 최종인터뷰에서 계속 떨어졌다. 다섯 번의 면접을 준비하면서 서른을 맞이했고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겼다. 같이 준비하던 스터디 멤버들이 하나둘 싱가포르로 떠나갔다. 합격 후 SNS에 ‘감사,‘행복’의 글과 함께 밝게 웃는 프로필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쓰라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준비하던 멤버들이었는데 나는 여기 남아 계속 준비하고, 그들은 싱가포르에서 직업 관련 교육을 받으며 점점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같이 느껴졌다.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들.


가끔 생각을 해봤다. 내가 서른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준비했더라면 나는 과연 합격했을까. 아니면 그만두길 잘한 걸까? 만약 합격해서 내가 원하는 곳에 살고 있다고 해도 그 후의 내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무거운 중압감에 조급해지다 보니 ‘합격’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내가 정확하게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만두고 뭐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던 2년 동안 그동안 직장다니며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을 안 하고 있었지만 직장 다닐때처럼 소비했고, 게다가 면접준비를 하며 돈이 야금야금 새나갔다. 면접복장, 이력서에 제출해야 하는 증명사진, 항공권 등 취업준비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았다.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꿈이란 걸 쫓는 것도, 내 존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모두 먹고사는 문제가 충족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꿈이 아니라 당장 생활비가 필요해서 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서는 결혼에 대한 압박까지 들어왔다. 나는 결국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 취업전쟁을 겪었고, 그 전쟁에서 완패했다. 


독일의 소설가 크리스티아네 취른트는 《실패의 향연》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패한 사람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 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고 말한다. 실패에는 끝과 시작이 함께 나타난다. 기회와 막다른 골목이 함께 나타난다. (중략) 실패하는 사람은 강하지만 약하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지만 실패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언제나 한발 앞서 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과 대면하게 된다.”

서른 살 9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국내 취업으로 눈을 돌려 토익시험을 다시 보고, 이력서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수십 군데 넣었지만 날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경력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4년간 평사원으로 근무, 퇴사 후 2년간의 공백, 나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력서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잡코리아에 들어가서 채용공고를 확인하며 지원했다. 그러던 중 H기업의 임원비서 및 사무업무를 발견했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회사였고, 나를 받아준 유일한 회사였다. 나는 새로운 업무를 잘 배워서 그쪽으로 새로운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일을 열심히 배워놓자고 다짐했다. 


덕수궁 돌담길 시립미술관 옆 신아빌딩으로, 서른하나 되던 해, 1월 14일 첫 출근을 했다. 사각사각, 하얗게 쌓인 눈 밟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던 첫날이 기억난다.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왔고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앞으로는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우리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다만 실패를 겪은 시기와 상황이 다를 뿐이다. 순간의 성공이 영원한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반대로 영원한 패배자도 없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서른, 한창 꿈을 향해 달려갈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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