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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Jun 24. 2020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출

오롯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애초에 나에게는 결혼이라는 옷이 맞지 않았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와서, 결혼생활을 11년이나 해놓은 지금에서야 말이다.


종종 친구들이 물었다. 어떻게 결혼을 마음먹을 수 있었느냐고. 고작 몇 년 사귄 사람과 인생의 남은 몇십 년을 함께할 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었냐고. 친구들이 기대한 답은 ‘사랑’이었을 것이고, 그 사랑을 어떻게 확신하게 되는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를 비껴갔다.


나는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졸업하면 살 집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건 K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사랑,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영원할까라고.


20대 후반의 나는 뒤늦은 방황의 시기를 겪었고 이공계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헤매다가 엉뚱하게 인문사회계열의 대학원에 또 진학했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부모님께 손 벌리고 사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즘에 나는 K와 연애를 했다. 대학원의 졸업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집이었다. 졸업하면 기숙사에서 나가야 하는데 모아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나는 K에게 우리의 결혼은 내가 졸업하는 2010년 2월이라고 무려 일 년 전부터 반복해서 말했다. K는 나보다 어렸고 K의 친구들 중에서 결혼을 한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나와 연애를 하는 동안, K는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한 적이 없다.


짙은 어둠으로 어디가 길인지 모르는 내 인생의 도피처가 결혼이었다. 당장의 집 문제도 해결됐다. 결혼을 하면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도 당당해진다. 그렇게 학생이었던 나와 K는 부모님의 손을 빌려 결혼 자금을 마련했고 그렇게 보금자리가 생겼다. 그래서 좋았다. 여전히 도무지 모르겠는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보다 둘이 나았다. 둘이 둘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온함이 좋았다. 문제는 K도 나도 자신의 세계가 중요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서로를 끼워 넣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나와 K는 결혼 초반 2,3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이 싸웠다. K는 때때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를 못 참고 나무벽을 부수기도 했다. 나는 무서웠지만 지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 아마 나와 K 둘 다 자아가 강한, 그래서 서로를 자기 틀에 가두고 싶었던 것 같다. 구속과 통제를 사랑이 가진 유일한 속성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에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부분을 포기했다. K도 나도 그랬다. 나는 대체로 포기한 채로 지냈지만, 내 상태가 엉망일 때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K를 들들 볶았다.


관계는 서로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결혼은 법이 공증하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그 관계를 사회가 보호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법이라는 테두리가 지켜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장 친밀한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서로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결혼 관계는 유지된다. 그렇게 형식이 본질을 압도하는게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와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할 뿐이었다. 하우스메이트가 K와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그렇게 위태로운 결혼 생활이 8년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10년쯤 살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그 정도면 그만 살아도 되지. 우리 10년 결혼기념일에 이혼할까?” 농이 반쯤 섞인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의미없는 관계를 의미있는 관계로 둔갑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의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의미없는 관계에 갇혀 의미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지 않았다.


K는 나를 잘 모른다. 그런데도 K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K에게 나는 10년 전 20대 후반에 머물러 있다. 그때의 대상화된 나만 그의 세계에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왜 나를 그의 세계 안에 움직이지 않는 존재로 가두었을까. 어쩌면 K는 가부장적 질서로 대변되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나를 주체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일례로 내가 감기몸살로 누워있을 때, K는 한참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밖으로 나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 파뿌리를 끓였다. 냄새가 역해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간단히 먹고 누워서 쉬고 싶다는 말을 수십번 해도, 나를 위한다며 한시간 넘게 요리를 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언제나 K는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의 애씀을 받아주지 않는 나쁜 년이 되었다.


그뿐인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거의 대부분의 집안인을 하고 양가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겼다. 그럴수록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K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왜 K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안다. K의 애씀에 가려져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 이 관계에서 느끼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최고의 이혼>이라는 드라마에서 휘루가 석무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몰라도 되는 거", 그게 이혼의 이유라고 말한다. 그게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그토록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나는 왜 K에게 "너는 나를 모른다"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다만 결혼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외롭게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이혼을 고한 결정적인 계기는 우습게도 결혼 11주년 기념일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 내 말을 K가 아주 가볍게 허공으로 날려버린 일이다. K는 결혼기념일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장어를 먹으러 가자며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내 말은 어디로 갔을까. 왜 나의 말은 K에게 의미로 전달되지 못했을까. 그때 비로소 나는 K와의 관계에서 객체화된 나를 자각했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휘루가 한 "당신이 좋아하는 건 당신 자신뿐"이라는 말은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언제나 석모 자신만 주체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결혼 관계 안에서 K와 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드라마 속 휘루처럼 가부장적 질서가 결혼 관계 안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어딘가 모자라고 어설픈, 그래서 남성 주체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존재였다. 반대로 K는 드라마 속 석모처럼, 성실하고 가정적인, 그래서 나무랄 데 없는 주체로 존재했다. 드라마 속 휘루도, 나도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남편과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없는, 그에게 속한 객체로서 그가 원하는 상태로 있을 때에만 살아있을 수 있었다.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집을 나왔다. 10평 남짓의 오피스텔이었지만, 오롯한 내 공간과 시간이 좋았다.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수잔이 떠올랐다. 소설 속 수잔은 객체화되고 대상화된 여성이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그 고독함에 머물 때에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가 최은영은 <19호실로 가다>의 추천사에서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들은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인내하지만 그 어떤 선택도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녀들의 기쁨은 고독 속에서, 오로지 충만한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그 작은 공간과 시간이 내게는 소중했다. 조금은 외롭고 고독했지만 그 고독의 충만함 속에서만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K와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내게 말해줬다. K가 이혼할 무렵 나와 친하게 지냈던 한 남성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K는 여전히 나를 가부장적 질서 안에 가두고 남성 주체의 객체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정동으로 몸에 새겨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지금도 나를 객체화된 돈재로만 인식한다. 주체로 변형하지 못한다. 그는 내가 왜 이혼을 고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혼을 고했을 때에도 그랬다. K는 자기가 더 잘하겠다고 했다. 나를 더 살뜰히 챙기고 보살피겠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들었었 때, 숨이 막혔다. 정말이지 K와는 함께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라는 정상성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살아있고 싶어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 나의 목소리를 갖고 싶어서,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서 탈주를 감행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상 바깥의 존재는 또 다른 면에서 객체가 되고 대상화되기 쉽다. 나를 정상 바깥으로 규정하는 시선에 갇혀 스스로 객체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나는 조금은 외롭고 고독하도라도 오롯이 나와 마주하면서 나와 세계를 더 깊이 만나고 싶을 뿐인데, 산다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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