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와 잘되든 아니든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어떤 죄책감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울컥했다.
수시로 눈물이 났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살았던 시절의 내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조금 더 용기를 빨리 낼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내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스스로 벗었다는 것이 대견하다.
사랑없는 결혼 때문에,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없이 살았다. 나는 영화처럼, 운명같은 사랑이 나타나서, 휘몰아치는 사랑에 정신 못 차리면서 그렇게 내 삶의 어느 부분이 정리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나는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몇차례 사랑 비스므리한 것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기혼의 상태가 걸림돌이 되었다. 걸림돌을 치우는 일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만큼 깊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영화나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다. 기혼자인 내게 운명같은 사랑은 오지 않았다.
나와 K는 섹스리스 부부였다. 누구의 문제라기 보다 그냥 그랬다. 그렇다고 정서적 교감을 충분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하는가 질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는 일은 어려웠다.이혼을 한다고해서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므로 이혼이 두려웠다. 어느새 나이까지 들어버린 나를, 생각이 많고 복잡한 나를 아무도 좋아해줄 것 같지 않았다.
대차게 나를 찾겠다며, 나로 살겠다며 큰소리를 쳤다가 조롱거리가 될까봐 두려웠다. 왜 나혜석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것만 같았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비아냥거리고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았다. 그럴때마다 다시 K에게로 눈을 돌렸다. 결혼 생활이라는 게 다 똑같지, 누구도 백퍼센트 만족하면서 살 수 없지 하면서. 말이다.
많이 두려웠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고, 사람들이 실패라고 말하는 삶을 살게 될까봐 무서웠다. 나로 살겠다는 호기로움만으로는 안될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내 마음을 모른척 한채, 그저 견디라고 스스로를 다그쳐온 삶을 멈추고나니 내가 스스로 한 선택들이 한없이 기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그것으로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서야 온실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온실이 주는 안락함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온실 바깥으로 나가는게 두려웠다. 무슨일이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함을 부정적으로만 여겼다. 불확실함은 예기치 못한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