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 출장이 있는 날이라 오전시간이 조금 여유로웠다. 비가 와서 연일 40도 가까운 폭염으로부터 빗겨난 여름 아침의 온도가 반가워 테라스에 나가고 싶어졌다. 무슨 책을 들고 나갈까 고민을 하다가 작년 겨울에 상수동의 독립서점에서 사고 처박아둔 책, <80년생들의 유서>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미리 읽어볼 수 없게 비닐로 포장이 되어있다. 구매자를 좀 믿어주면 좋을텐데- 책의 내용을 미리 볼 수 없도록 하느라, 하필 나는 또 그런 책에 마음이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사용하고야 말았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비닐은 PVC, Polyvinyl chloride이다. 우리가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PET 이외에도 PVC(폴리염화비닐), PES(폴리에스테르) PA(폴리아마이드, 나일론), PS(폴리스티렌, 불투명한 플라스틱) 등 엄청 많다.
그러니까 요즘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플라스틱을 줄이자고들 이야기하지만, 플라스틱은 우리 삶에 이미 깊숙이 너무 많은 영역, 거의 모든 영역에 플라스틱이 있다. 그러므로 플라스틱 없이 살겠다는 것은 현재로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숲속에 처박혀 사는게 아닌 이상 단 하루도 불가능하다. 아니 자연인도 입고있는 옷이든 사용하는 물건이든 플라스틱이 아닌 게 없을까.
그리고나니 출장에서 회의실 비용을 결제하고, 인터뷰 마치고 사먹은 토스트 값을 지불할 때에도 플라스틱을 썼다. 신용카드는 플라스틱이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거나 아니면 앱카드를 써야하나. 그러나 앱카드가 저장된 스마트폰에도 플라스틱이 있다.
후후. 그럼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시도는 플라스틱이 내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있는지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저녁이 되었고 꿰맨 상처에 밴드를 바꾸어 붙일 시간이다. 이럴수가 밴드의 포장재 역시 플라스틱이다 . 포장재 말고도 밴드도 폴리우레탄필름… 으로 만들어졌다.
인지하지 못한 플라스틱이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일회용 컵, 배달용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삶에 숨어있는 플라스틱을 모두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