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은 역본능이다

by 피델

어제 버크만 스터디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 7월, 처음 버크만을 배우고 스터디를 결성했는데, 두 번 정도 한 후 마스터 FT 과정을 이수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분들과 합쳐서 운영하기로 했다.



첫 번째 역본능: 신청하고 하지 않음을 극복하기


스터디 단톡방에 들어오신 분은 열세 분. 정말 많이 왔다.
그런데 어제 스터디 신청을 하신 분은 여섯 분뿐이었다.


'음.. 스터디를 하겠다고 해놓고 정작 신청은 하지 않는 건 뭐지?'


아마 그 시간에 다른 스터디가 있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멀리 있으면 의미를 보지만,
가까이 있으면 시간을 본다

처음에는 열심히 해보려 했지만, 막상 할 때가 되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거다. 이게 첫 번째 역본능이다. 하려면 나의 귀차니즘을 극복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이게 진짜 심하다. 한다고 저지르는 건 백 개, 실제로 몇 개나 하고 있나 싶다. 그냥 내버려두면 하지 않는 내 게으름을 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알기라도 하니까.


그래서 내가 쓸 수밖에 없는 게 **"멱살잡기"**다. 그렇게 해야 하게 된다는 걸 아니까.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짓은 진짜 싫어하는 나이니까.



두 번째 역본능: 미루고 싶음을 극복하기


스터디 당일, 마음이 무겁다.

오늘은 '흥미'에 대한 셀프 디브리핑과 상호 피드백을 하기로 했으니 공부를 좀 하고 가야 하는데, 회사 일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이놈의 장표... 그냥 집에 가서 쉬고만 싶다.

게다가 내일은 건강검진이다. 대장내시경 때문에 약도 먹어야 하는데...


'오늘 못 간다고 선언할까? 그냥 쉴까?'


내 안의 작은 악마가 속삭인다.


안 돼! 첫 번째 모임부터 그럴 순 없지. 두 번째 역본능을 참아낸다.


스터디 두 시간 전. "이제 퇴근해서 늦을 것 같아요"

조금 후. "전 다른 모임이 있어서 한 시간만 하고 나가야 합니다. 죄송해요"

스터디 시간이 거의 되어서. "이제 퇴근해서 가고 있는데, 다른 모임이 또 있어서 금방 들어갔다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첫 번째 든 생각: '에이, 그냥 취소할까?'

나도 머리 아픈데, 공부도 다 못했는데...

아니야, 그럴 순 없다!


과거 경험상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미루는 게 쉬워진다. 그럼 스터디가 한 번씩 취소되기 시작하고, 그 스터디가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스터디뿐 아니라 독서모임에서도 그랬다.

'이번 한 번만..' 이 언젠가는 뉴노멀이 된다.


마음을 다잡았다. **"두 명만 되어도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서운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이 스터디가 나만큼 우선순위가 아니구나'에서 '다들 진짜 갓생 사시는구나'로.

그렇게 두 번째 역본능을 극복한다.



세 번째 역본능: 정리하기


스터디를 하면서 해야 할 게 생긴다.

버크만, MBTI, 강점, 에니어그램 등등. 진단 툴을 가지고 하는 강의의 생명은 **'사례'**다. 스터디를 하다 보니 각자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데, 어떤 분의 사례는 너무 공감이 잘 되어서 하는 말이 쏙쏙 들어오기도 하지만, 어떤 분의 사례는 너무 개인적이거나 단순한 성향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제안했다. 우리 사례를 정리해두자고. 서로 강의할 때 잘 사용해보자고.


음.. 아이디어는 좋은데 귀찮다. 내가 또 만들어야 하나. 다음 스터디 올 때까지 다섯 개씩 쓰자고 이야기했다. 또 내가 내 무덤을 판 건가 싶다.


하지만 안다. 이게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는 걸.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처음 잡았던 계획대로만 한다면 생각보다 인생은 쉬운 게임이다.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아서 문제인 거지.


그렇게 세 번째 역본능을 극복해본다.



인생은 역본능이다


"역본능"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코칭을 배우면서였다.

코칭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참아야 한다. 답은 '너'에게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을 잘 해야 했다.


그게 세상 어려웠다. 그 사건이 어떻게 발발했는지, 너는 왜 거기서 그렇게 했는지, 나라면 이랬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래도 '알고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내가 들어야 해. 그래야 도움을 줄 수 있어. 그래야 내가 발전할 수 있어.'

알고 있으니 할 수 있었다.


어제의 나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하기 싫은 본능을 이겨내야 한다.

인생은 그래서 역본능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 대한 메타인지가 되어 있으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하는 것과 하는 것.[말하는대로 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