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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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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01. 2023

내안의 너 #10

예? 심정지요?

콩이 나오자 남은 과정은 봉합뿐이었고 아기를 꺼내는 것보다 수술부위를 봉합하는 데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때는 수면마취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고 주황색 모자를 씌운 콩이 어딘가로 데려가지는 걸 보며 잠이 들었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로요.




남편은 계획치 않았던 수술에 발을 동동 구르며 대기 중이었습니다. 장모님께 전화드려 수술하기로 정했다는 연락을 드리고(친정엄마는 제가 갖은 고생을 하다 응급수술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셔서 굉장히 상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때, 웬 노부부가 흥분한 채로 수술실 앞에 찾아와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부부 중 할아버지는 간호사를 따라 신생아실로 들어가고, 곧 할머니 쪽은 남편이 있는 벤치로 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편에게 말을 걸게 됩니다.


'부인 제왕 수술하러 들어간 거예요?'

'네? 아, 네....'

'그럼 조심해요. 우리 딸이 한 달 전에 여기서 수술하고는 회복중에 심정지가 와서 지금 대학병원에 입원중인데 여전히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예요.'

'네?'


그렇잖아도 좀 심난한 채로 대기하던 남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을 겁니다. 급기야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자기 딸 사진까지 보여주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이 병원 회복실에서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그때 병실에 보호자가 없었어서 무슨 경위로 그렇게 된 건지 간호사들도 파악을 못한다, 수술 직후에는 괜찮았는데 회복 중에 상태가 나빠졌다고 병원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집안은 난리가 나서 아기도 바로 데려가지 못하고 한참을 신생아실에 두었다 등등, 부인을 수술실로 보내고 대기하며 듣기에는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말을 마구마구 쏟아내고 맙니다.


수술 후에 괜찮아 보여도 병실에 산모를 절대 혼자 두지 말라고 일갈하고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말 그대로 남편의 심박수는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담당 간호사가 병원 서류에 사인할 게 있다며 남편에게 다가왔고 - 드라마처럼 수술실 문이 열리며 침상이 밀려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수술실에 저와, 제 건너편에 다른 환자가 있었던 것을요. 수술실 벽에 이름이 적혀 있었거든요. 그분은 아마 다른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을 받으시는 것 같았는데 기다리던 보호자 입장에서는 안이 어떤 구조인 지 모르니 같은 문으로 나오는 침대라면 당연히 같은 사람인 줄 알았겠지요. 놀란 마음으로 간호사 어깨 너머 침대를 보는데 마스크를 끼고 머리를 싸매 놓아 분간이 잘 가지 않지만 누가 봐도 얼굴과 온몸이 판이하게 부어 있는 겁니다.


세상에 수술이 진짜 잘못됐나 보구나!


먼저 나온 환자분이 제가 아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제가 뭔가 수술이 잘못되어 얼굴이 부었다고 생각한 남편은 혼비백산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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