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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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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17. 2023

내안의 너 #12

이곳이 바로 조리원 천국

코어 상실로 눈물겨운 5일간의 회복실 생활을 끝내고 조리원으로 이동하는 날.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조리원으로 가기 위해 콩이를 인계받고 병원에서 선물해 준 - 아기에 비하면 꽤 거대해 보이는 - 겉싸개까지 받아 녀석을 둘둘 말아 나왔습니다. 둘이 들어와 셋이 나가는 우스갯소리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신생아를 안고 만나는 세상은 위험과 세균과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전쟁터처럼 느껴졌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듯 가만가만 녀석을 안고 차에 태워 체감시속 100km(실제속도 30km)로 이동해 조리원에 도착했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아기 머리가 뒤흔들릴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죠. 조리원에 들어가는 순간의 기분은... 뭐랄까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조난당했다가 거대 여객선을 발견한 느낌?


우린 이제 살았어! 저들이 우릴 지켜줄 거야!


방 안내, 식사 안내, 신생아실과 수유시간, 병원진료 외 엄격한 외출금지 등 여러 안내를 들으며 입소한 조리원은 제게는 천국이 맞았습니다(모유량이 적어 수유콜을 제대로 안 받았던 것도 천국으로 느껴진 원인일 것 같긴 합니다만) 2주간 방 안에만 갇혀 있으면 답답함과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 달라진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우울감이 깊어진다는 친구들의 많은 후기와는 달리 방에서 주는 밥만 먹으며 유튜브와 독서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아마 천성이 집순이인 데다 감정이 별로 널을 뛰지 않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괜찮은 휴가였던 것 같습니다.

하루 2번 모자동실 시간이 있었는데, 속싸개에 돌돌 싸여 배달되는 콩은 보통 자거나, 분유를 주면 얌전히 빨다가 남기거나, 잘 안 움직여지는 사지를 느릿느릿 버둥대며 저희를 쳐다보곤 했죠.


우리 아긴 너무 얌전하구나!(착각)


대단한 착각을 하며 2주간 아기를 돌보는 게 아닌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퇴소 후의 일상은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군대 가서 불침번만 매일매일 서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불침번을 서면서 화장실을 잘 못 가게 하고 밥도 제때 안 주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만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콩이 생기기 전에는 임산부들이 배가 나와서 몸이 무거운 사람들인 정도로만 생각했지 다른 어려움은 별로 와닿지가 않았고요, 양팔에 신생아를 안아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아기 있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온갖 배려는 다 해줘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콩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저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아기였다가 어른이 된 거라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린 우리 또한 배려받는 어린이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죠. 열차에서 옆자리 승객들의 한 시간에 걸친 대화 소리는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어린애들이 높은 데시벨로 한두 마디만 떠들면 '아, 오늘 자리 운 되게 없네' 하고 짜증스러워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제게도 있습니다.


이젠 아기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 어른들의 피 땀 눈물로 키워지는지 아는 만큼, 쉬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기라면 다 귀여워하는 정 많은 사람은 여전히 아니지만요. 대중교통이나 수영장 같은 곳에서 아장아장하는 아기들이 보이면 다치지 않나, 하고 한번 더 보게는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최우선이 될 필요는 없지만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으로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대과거 시절 받았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도록, 애들이라면 무턱대고 어우 시끄러워 절레절레하기 전에 딱 한 번만 그냥 봐주면 될 것 같습니다. 크느라 고생하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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