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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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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17. 2023

내안의 너 #13

시지프스의 바위

과거엔 유모차를 밀며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엄마들이 마냥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밤새 불침번 서고, 새벽에 아기 분유 챙기고, 말도 안 통하는 녀석들이랑 지지고 볶고 집안에서 놀다가 낮잠 자는 동안 집안일 하고, 나는 이제 모든 체력을 다 소진한 것 같은데 막 낮잠 자고 일어난 이 녀석은 힘이 넘치고, 집에서 놀아주기도 한계가 있으니 내 꼴이 아무리 상거지여도 유모차에 태워 나오기라도 해서 그 시간을 채워주게 된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돌아와서 다시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 그때부터 쉬는 시간인데 꼭 그때 되면 청소할 것 빨래할 것이 눈에 띄고 이것저것 손대다 잠들면 이튿날 새벽, 자 다시 처음부터 시작!




저희는 맞벌이면서도 둘 다 배달음식을 크게 즐기지 않는 편이라 간단히라도 평일 저녁은 집에서 챙겨 먹곤 했습니다. 콩이 생기고 외식이 어려워지며 주말까지 집밥을 먹게 된 거죠. 그러기를 서너 달, 결국 냉동실엔 온갖 밀키트와 냉동식품이 미어지게 들어차고 냉장실은 텅텅 비었습니다. 3인조가 되니 신선식품을 재고관리할 힘도 여유도 없더라고요.


이 쪼그만 녀석이 하나 생겼다고 집안일이 어쩜 세 배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일단 애 빨래는 매일 돌려도 부족할 만큼 쏟아졌고, 젖병 설거지를 하루에 6~7번씩 하다가 하루 4차례로 줄어든 날 신나던 것도 잠시, 이유식을 시작하려니 이거 일이 정말 산처럼 늘어났습니다. 분유도 먹고 죽도 먹고 물도 먹고 간식도.... 


여기에 구강기 아가의 특성상 뭐든 입으로 들어가니 장난감도 때 되면 닦아줘야 했죠 (사실 이젠 장난감 닦기는 포기 상태고 콩의 면역력을 믿을 뿐입니다) 어른들은 말라가는데 콩은 토실토실 살이 올랐죠. 오랜만에 뵙는 시댁 어른들은 저희 부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얼굴들이 왜 그리 상했냐고 물으셨으니까요.


이 와중에 콩이 8개월 차 되던 날 저와 남편은 역할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제가 육아휴직을 반년 가량 남겨둔 채 복직을 하고, 남편이 4개월간의 휴직을 실시해 돌까지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아기를 보기로 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이 결정 덕에 콩은 현재 아빠 바라기가 되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찾는 아가가 되었습니다(8~9개월 차에 점점 더 애착이 강해진다는데 그때 선수교체가 이루어진 게 문제였을까요.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부들부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에는 육아의 어려움에 공감은 했으나 현실을 정확히는 몰랐던 것 같고, 휴직기간 동안 여유롭게 아기와 함께 카페 나들이를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가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나들이는커녕 점심도 똑바로 못 챙겨 먹어 날로 말라가며 순식간에 결혼식 몸무게를 되찾았죠.


저희 부부는 연애 때부터 정말 많이 안 싸운 편인데 아기를 낳고는 투닥거릴 일이 잦았습니다. 둘 다 계획적인 성격인데 콩과의 생활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둘 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내향인들이라 서로의 개인적인 공간을 늘 배려해 주는 성격이었는데 콩은 그런 배려 따윈 1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모든 부부가 겪을 법한 아기에 대한 의사결정(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쪽쪽이를 새 걸 주느냐 한번 문 걸 주느냐, 양치하고 우유 한번 더 먹었는데 다시 닦이냐 마느냐 등 세상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도 지친 날에는 짜증스러운 기분이 그대로 전달되어 분위기가 냉랭해지곤 했습니다.


이 와중에 남편은 화가 나면 즉시 와악! 터트리고 나서 사과하는 편인 반면 저는 웬만해서는 그냥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보니, 갈수록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죠. 아니 나도 일하고 피곤하고 육아는 똑같이 다 하는데 왜 나는 감정노동까지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좀 참으면 안돼? 그런데 화가 나는 순간에도 할 일은 있고 콩은 달래야 하고 나는 쉴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우리 사이에는 그 전에 없던 것들이 쌓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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