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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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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17. 2023

내안의 너 # 14

그래서 쌓인 게 뭐냐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가지면 오히려 부부는 소원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정확히는 사이가 멀어진다기보다 둘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거죠. 둘이서 유럽에 가자던 계획도 결혼 직후 코로나가 터지며 요원해졌는데 이젠 콩이 있으니 당분간 유럽여행은 어려워졌고요. 늦은 밤 새벽까지 여는 술집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얘기에 날 새는 줄 모르던 시절은 전생 같기만 하죠. 주말에 소파에 비비적대고 누워 미드 정주행을 하던 게 얼마나 그리운지.


연애할 때 진면목을 보려면 함께 여행을 가 보라고 하죠? 아기와 함께라면 인도 배낭여행보다 더한 난이도로 상대방의 바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밝혔듯이 저는 자녀 계획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 봐도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고 피곤해 보였거든요. 아기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요.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사랑은 한번 싹트기만 하면, 그에 들인 노력과 시간, 돈에 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아기란 존재는 여기에 본능까지 더해져 무한 애정을 쏟게 만들죠.


그래서 콩이 때문에 우리 부부만의 개그 코드가 생기고, 무방비 상태인 아기 엽사를 찍어대며 낄낄거리는 한편 아무리 사진을 공유해도 질리지 않는 건 서로뿐이란 걸 알기에 부부 카톡창은 콩이 사진으로 포화상태입니다. 콩이가 우는 소리 흉내내기(아기는 진짜로 응애! 하고 웁니다. 알고 계셨나요? 화나면 정말 으으응!! 애애애!! 하고 울더라고요), 콩이 말하는 소리 따라 하기, 도망가는 콩에게 배방구 하기... 그야말로 이 녀석이 우리 집 연예인이 된 느낌입니다.


물론 콩을 보면서 애정만 느끼는 건 아닙니다. 저는 결혼 전에는 '강아지를 키워도 정드는데 사람 아기는 오죽하겠냐'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잖아요 사람 아기는 말도 안 듣는데... 하고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사실 콩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사전 동의 없이 세상에 내놨으면 콩이 미성년자인 동안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정 60에 책임감 40이 섞여 있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그래서 부부 사이에 쌓인 게 뭐였는지 얘기하다 말았네요.

이전의 남편은 그냥 남편이었습니다. 남친에서 레벨업해 나와 공동 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사람. 가족들도 왕래하고 함께 눈뜨고 잠드는 사람. 주중엔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둘이서 신나게 놀고.


지금은 공동 창조물이 생겼습니다.  B.C / A.D 같은 거죠. 콩 전, 콩 후.

애초에 비교가 안 되는 변화인 겁니다. 

종교보다 더한 파괴력으로 우리를 뒤흔든 콩과 함께 살아가면서 남편과 저는 부부에서 부모로 다시 레벨업했습니다. 둘만 나가면 여전히 연애할 때 생각이 나지만, 일상에서 우린 기저귀 갈고 침 닦고 외계어로 콩과 소통하고 둘 중 하나는 일어나서 밥을 먹곤 하죠. 서로가 행여라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건강이 상할까봐 벌벌 떱니다. 하나라도 사라졌다간 나머지 둘도 와르르 무너지는 삼각대 구조거든요!


그래서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습니다. 피로와 전우애, 무엇보다 눈 깜박이는 순간조차 아까운 추억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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