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아기랑 삿포로 # 1
가까우니까 편하겠지?
결혼 전, 일본은 자고로 준비 없이 떠나는 맛에 가는 여행지였다. 가깝고, 시차도 없고, 어찌어찌 대중교통으로 다닐 만하고, 관광을 안 해도 자잘한 쇼핑거리로 충분히 놀 수 있는 곳.
아이를 낳고는 동남아만 줄기차게 다녀왔기에 28개월 콩을 데리고 셋이서 일본으로 떠나기로 결정, 지난번 3인 체제 여행에서 자신감을 얻었기에 이번에도 순항을 기대하며 날씨가 환상이라는 10월 삿포로로 떠났다.
영유아를 동반한 일본 여행은 동남아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5~6시간이 기본인 동남아 여행에 비해 일본 치고는 먼 삿포로도 3시간 이내로 도착이니 비행에 대한 압박이 없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아이도 지루해하지 않고 스티커북으로 꽁냥대며 이제 좀 컸다고 기내식도 참새처럼 잘 먹고... 장하다 내 새끼.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동남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전해져 왔는데 예전에 자유의 몸으로 올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교통약자 우대가 1도 없다는 점에서 1차 타격 (유모차만 보여도 여기로 오시오! 하고 먼저 길을 내주던 태국 입국장 직원들.. 사랑합니다), 입국서류에 호텔 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 써 오라고 했을 때 2차 타격(다음부턴 QR로 꼭 미리 써가야지), 육류반입이 안 된다는 점은 익히 알았지만 인천공항에서 싹싹 다 먹고 남은 아이 도시락통에 진심 깨알만하게 남은 육수 냄새를 맡고 달려든 귀여운 비글이 때문에 세관에 잡혀간 게 3차 타격!
여행을 떠나면 웬만한 일에는 그냥 허허 그럴 수 있지 나중에 안줏거리로 요긴하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긍정회로를 돌리는 나와는 달리 살짝 개복치 기질이 있는 심약한 남편은 비글이에게 끌려가며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았고, 여기에 라스트팡으로 국제선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 두 번이나 버스를 보내고 타게 되자 그는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는 국내선을 거쳐 국제선으로 오기 때문에 국내선으로 이동해서 타는 게 자리가 더 많지만, 우리는 아이가 있어 그렇게까지 이동하긴 싫었고 고속버스 중간에 보조의자 자리는 남아 있었지만 아이 안고 그렇게 타긴 위험해 보여서 버스를 한번 더 보내기도 했다)
1. La'Gent Stay Sapporo Odori Hokkaido
도착해 보니 호텔은 공항에서 버스 기다리고 할 것 없이 시내까지 열차를 타고 왔어도 도보 이동이 가능한 거리여서 버스를 선택한 걸 후회했지만 어쨌든 내린 곳에서 가까운 건 버스였고, 맨날 큰 버스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콩의 소원도 이루어 줬으니 그걸로 됐다고 위안을 삼았다.
호텔 컨디션도 가격 대비 위치와 룸이 마음에 들었고 대욕장도 따로 있어 번갈아 가며 피로를 풀고 올 수 있었다는 게 아주 만족스러웠다.
2. 수프카레 쇼린
짐을 풀고 후다닥 호텔을 빠져나와 근방 맛집을 헤매다가 토요일 밤이다 보니 웬만큼 유명한 곳은 웨이팅이 있어 간신히 도착한 수프카레집. 수프카레는 결혼 전 삿포로 여행 때는 먹어보지 못한 지역음식인데 이번에 처음 시도해 보았고, 그야말로 먹지도 않은 술이 해장되는 맛의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삿포로 하면 유명한 것이 삿포로에서만 판매되는 삿포로 클래식인데, 예전에 왔을 때도 먹어는 봤지만 이렇다 할 기억이 남지 않는 맛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음식도 아니고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인데, 애초에 진짜 맛있으면 이미 마구마구 팔려나가 일본 전역에 유통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남편도 나도 실망스럽지 않아 하며 여행 기분으로 마셨다.
로고는 참 예쁘다. 굿즈, 기념품 좋아하는 남편은 이런 거 뭐라도 팔면 사가겠다고 했지만... 그만둬...!
한국에서는 밤에 아이를 데리고 나다닐 일이 별로 없으니 여행지에 와야 밤거리를 걷는 아이는 늘 신이 난다. 아무런 재미있는 게 없는 밤거리지만 이미 신난 너의 뒷모습, 그런 네 손을 잡은 나의 반려자.
이런 순간이면 낯선 곳에 셋이서 노닥거리는 순간이 너무나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