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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민정 May 31. 2023

21살, 나의 첫 번째 카페 아르바이트

강남역 삼성타운 6평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배운 것



드디어, 딸기스무디의 인연으로 첫 알바를 시작했다. 

강남역 삼성타운 근처에 있는 6평 남짓의 작은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였다. 


알바를 시작할 땐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입지가 어마어마했다. 

카페가 있는 이 건물을 중심으로 앞, 옆, 대각선 3개의 건물이 삼성 건물이었다. 강남에 있는 삼성 건물 으마으마하게 크고 높다. 거기에 다 사람이 채워져 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일하다가 틈나면 어딜 가겠나. 길 건너기 귀찮으니까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카페 가는 거다. 우리 카페가 있는 그 건물은 1층에 무려 8개의 카페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장사가 다 같이 잘 되니까 사장님들끼리 사이도 좋았다. 옆집에는 카페 마마스가 있었는데, 사장님이 종종 가져다주시는 포도주스가 엄청 맛있었다. (난 또 우리 사장님한테 옆집 주스가 더 맛있다고 말해버렸다) 


카페에 들어서면 긴 주방이 이어졌다. 

주방 앞에는 간단히 걸쳐 앉을 좁은 소파가, 그리고 소파 안쪽에는 2인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카페 앞에 있는 2개의 바테이블에서 햇살을 쬐며,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다. 간혹 2인 테이블에 앉아서 긴 토론을 나누는 두 분이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에 비해 유난히 머리도 헝클어져 있고 피곤해 보였다. 훗날 조금 친해져서 여쭤보니 건축파트라고 하셨다. 하하.  


주방에서는 3명 혹은 4명이 옹기종기 붙어서 함께 일했다. 

1-2명은 커피 제조 및 손님한테 커피 건네드리기 담당(목소리가 우렁차야 한다), 1명은 주문받기(포스) 및 나간 주문 확인 담당, 1명은 기타 음료(생과일, 에이드 등등) 제조 담당을 맡았다. 각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쿵짝쿵짝 움직였고, 그 움직임들이 모여 때론 위태위태하게 때론 씩씩하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나아갔다. 






첫 번째 카페 알바에서 배운 것들. 


1. 나는 커피를 못 마신다. 

그렇게도 카페를 좋아하던 나는, 어이없게도 커피를 못 마신다. 아르바이트 첫날, 커피 내리는 기술을 배우면서 내가 내린 커피를 맛보느라 에스프레소 샷을 3잔 마셨다. 이상하게 몸에 힘이 쥬루루룩 빠졌다. 나는 마감 담당이라 행주를 빨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몸에 하나도 힘이 없으니 자연스레 나에게 커피를 마시게 한 매니저님이 마감을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5시까지 잠들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나에게 에스프레소를 권하지 않았다...


2. 카페 매출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는 대학교 방학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으므로, 여름 한복판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청 더운 날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철도 있었다. 기억으로 무지 더운 날은 일매출이 120만 원 정도였고(10년 전 매출이 이 정도!), 비가 오면 매출이 70만 원 정도로 뚝 떨어졌다. 덥지 않아서 시원한 음료가 안 당겼을 수도 있고, 우산 쓰고 나오기 귀찮아서 그냥 지하로 연결된 카페에 가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사실은 커피를 먹으러 나온 게 아니라 산책 겸 담배타임 때문에 나오는 건데 그걸 못하니 카페에 갈 이유가 아예 없어진 것 같기도 했다. 여튼 현명한 우리 사장님은 비가 오면 손님이 없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사다리 타기를 해서 간식을 사다가 먹으면서 놀았다. 


3. 카페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손님들은 매상을 많이 올려준다. 

카페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것은 바로 커피 내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끝나면 세상 환하고 밝은 사람들 무리에 정말 슬픈 표정의 한 사람이 터덜터덜 끌려온다. 그럴 땐 아무도 아메리카노를 시키지 않는다. (카드 낸 사람 빼고)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주세요!" 


4. 아이스 유자는 맛있지만 살이 찐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스 유자라는 메뉴를 처음 먹어봤다. 유자청을 시원하게 탄 메뉴인데, 이게 생각보다 진짜 맛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2-3잔씩 아이스 유자를 타먹었는데, 그래서인지 1달 만에 7kg 쪘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하고 아르바이트비 말고 턱 하나를 더 얻어 간다고 놀리고는, 학교로 돌아가는 나에게 유자청을 선물해 주셨다. 고맙고 나빠...


5. 카페일은 서비스업이다. 

매일 아침 카페에 가기 전에 화장실 거울을 보고 연습했다. '아-에-이-오-우!' 이런 종류의 카페(회사원 전용 카페)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카페는 '커피' 그 자체보다는 '휴식'의 의미가 더 컸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을 주려면, 잘 내려진 커피는 물론 편안하고 기분 좋은 쉼터를 만들어주는 것 역시 일의 연장일지 모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음 방학 때 일하고 싶은 새로운 카페를 또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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