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그림책 작업일지
그림책을 그리는 건 꽤 오래 나의 꿈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생각이 나려면 주저리주저리 써봐야 또 생각이 나기도 하니까. 일단 써보기로 한다. 아니,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로, 이런 글도 써봐야지 저런 글도 써봐야지 하면서 매번 새로운 매거진만 만들고, 체계적으로 써야지 하면서 목차를 만들고, 정작 어느 하나 꾸준히 글을 못 쓰고 있다. 내 의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조금은 부담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 부담 없이 글을 써보기로 한다. 아니 뭐 좀 써놔야 나중에 다듬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일단 시작하자!
어릴 때, 구체적으로 보자면 5살 무렵.
엄마 아빠는 주말부부도 아니고 월간부부였다. 아빠는 서울에 회사, 엄마는 부산에 회사. 서울 부산이 5시간 반 걸리던 시절 우리는 매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랑 외갓집에서 살았는데, 나는 유명한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엄마 다리를 잡고 엉엉 울었는데, 보다 못한 엄마가 특단의 조치로 '달팽이 과학 동화' 전집을 구매했다. 그리고 아침 출근 전에 딱 한 권, 나에게 줬는데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엄마의 다리를 놓고 하루종일 그림책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이후로 그림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이 되었다.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어김없이 그림책을 원했다. (내 동생은 어김없이 장난감을 골랐다.)
그러다 다시 그림책이 좋아진 건 언제였을까.
아마 대학에 와서였던 것 같다. 건축학과 공부를 하다 보니, 세상엔 너무 알아야 할 게 많았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또 엄청난 속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느릿느릿한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그림책은 나에게 말했다. 정말 중요한 건 단순해. 세상의 모든 걸 다 흡수할 필요는 없어, 때론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중요해. 덕분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고, 숨통이 트이는 위안을 얻었다.
나에게 그림책은 부적이었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던, 살아가면서 정작 잊지 않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다시 되새기게 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