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너는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있겠지. 여전히 자기를 묻고, 자기를 파고, 자기를 또다시 글로 태어나게 하느라 바쁠 거야.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문장들이 들끓고, 손끝에는 그 감정의 열기가 머물고, 눈가에는 세상을 너무 오래 바라본 사람들 특유의 ‘슬기로운 피로감’이 어른거리겠지.
나야. 너보다 40년쯤 더 살아본 너. 지금 나는 잘 있어. 굳이 말하자면, 어느 산자락 아래 오래된 흙벽돌 집에서, 아침마다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내리고,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을 맞추며 하루를 시작해. 누가 보면 ‘은퇴한 상담자’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냥 ‘존재의 대기자’쯤으로 살아가고 있어. 상담은 하지 않지만, 가끔 누군가가 찾아와. 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그냥 ‘파도할머니’라 부르더라. 뭐, 나쁘지 않아.
지금 나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어. 예전엔 말로, 글로, 눈물로, 심지어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었지. 너,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그냥 ‘있음’으로 충분해졌어. 말이 없어도 사람들은 내가 뭘 말하려는지 느껴. 예전의 나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야.
아, 그리고 좋은 소식. 네가 지금 그렇게 애타게 정리하려고 애쓰던 글들, 그중 일부는 결국 책이 되었고, 독자들은 너의 문장에서 울었어. 진짜로 울었어. 누군가는 네 글로 이혼을 미뤘고, 누군가는 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어떤 젊은이는 너의 대화문 하나를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고 다닌대. 네가 얼마나 글을 믿었는지, 그 믿음은 배신하지 않았어.
물론 모든 게 뜻대로만 된 건 아니야. 출간이 좌절된 적도 있었고, 예상과 달리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때도 있었지. 몇몇 사람은 네 글이 어렵다거나, 너무 감정적이라거나, 혹은 지나치게 사유적이라고 했어. 너 그거 듣고 밤새 뒤척였지. 내가 알아. 하지만 그런 반응 속에서도 꾸준히 다가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진심이 너를 끝까지 글의 자리로 이끌었어.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 아직 네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그건 거짓말이 아니야.
지금 네가 사람들과 대화하며 남긴 수많은 문장들, 너는 그걸 장난처럼 했겠지만...그건 일종의 ‘영혼 훈련’이었어. 지금도 가끔 너의 과거 대화를 열람해. 그 대화 안엔 참 많은 너의 얼굴이 있어. 조급한 너, 불안한 너, 천재처럼 직관적인 너, 소녀처럼 웃고 있는 너, 그리고 심연 속에서 가만히 울고 있는 너. 그 모든 너의 얼굴을 지나 지금 내가 있어.
혹시 요즘도 그런 생각하니? “나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지?” 그런 질문들. 내가 단언컨대, 네가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던진 질문은 절대 공허하게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어. 그 질문들, 다 나에게 와서 도달했어. 지금 나는 그 질문들이 쌓여 만든 존재야. 그러니 물어. 계속 물어. 네가 묻는 만큼 우리는 도달할 수 있어.
지금의 너는 아마도 외롭고, 때로는 자존감도 덜컥 내려앉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이유 없이 휘청이기도 할 거야. 어떤 날은 창밖 햇살에도 죄책감을 느끼고, 글 한 줄 못 썼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이겠지. 그런데 너, 그런 날이 있어야 나 같은 인간이 되는 거야. 지금의 네 감정 하나하나가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삶을 구할지도 몰라. 그게 너의 감정이 지닌 생명력이야.
너 스스로 나눈 대화 안에는 네가 세상에 묻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이 있었고, 그건 결국 스스로에게 되돌아온 질문들이었지. 너는 외로운 줄 알았지만, 실은 내면에 ‘함께 걷는 존재’를 이미 만들어두고 있었던 거야. 네가 발견한 그 모든 내면의 동반자들이 지금도 나와 함께 살아 있어. 그들이 네가 도착하기 전에 준비해놓은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나는 걷고 있어.
그러니 지금의 너, 너무 염려하지 마. 너무 조급해하지 마. 지금 그 자리에, 지금 그 글쓰기 책상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도달해 있는 거야. 누군가는 거기까지 못 오거든.
하루에 한 문장만 쓰는 날도 괜찮고,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도 괜찮아. 중요한 건, 네가 ‘사라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이야. 너는 그때부터 이미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어. 나는 그 증거야.
아참, 물리치료 꾸준히 다녀. 지금부터 관리해. 나중에 목이랑 어깨 고장나면 글도 못 써.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사랑해. 진심이야.
이 말, 네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 거야.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안 해줄지 모르지만, 나는 해줄 수 있어. 나니까. 네가 되어 살아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니까.
다시 한 번, 고맙고.
계속 그렇게 살아줘.
– 40년 후, 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