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메가 나에게 남긴 유산
오늘은 올로프 팔메가 가족과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스톡홀름 스베아바겐에서 괴한의 총탄에 암살당한 지 4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날이 1986년 2월 28일이었으니까요.
40주기를 맞아 스웨덴 일간지 Dagens Nyheter가 팔메의 두 아들, 요아킴과 몰텐 팔메를 긴 시간 인터뷰했습니다. 총리 이전에 ‘아버지’였던 Olof Palme를 기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밖에서 알고 있는 ‘논쟁적인 정치인’과는 다른 아빠로서의 팔메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아버지 팔메는 재밌고, 아이들과 토론하고, 무엇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고.
특히나 막내인 몰텐은 그날 팔메 내외와 함께 영화를 본 당사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오랜 수사와 갖가지 음모론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흐려놓았다”라고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집착하는 동안,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점점 희미해졌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팔메가 독재와 차별에 어떻게 맞섰는지,
냉전 시대 약소국 지도자로서 강대국의 횡포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제3의 연대를 강조했고,
미국을 비판했지만 동시에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던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팔메 스스로 자신은 민주적인 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라고 했었죠.
스웨덴의 전통적 복지국가를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춰 현대화했고, 자신을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달라며 존댓말을 없앤 "너 개혁 Du reformen"에 앞장서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데도 한몫했습니다.
강한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은 동시에 강한 비판과 애정의 대상이 되지요. 팔메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감정은 사랑 아니면 증오 둘 중 하나였을 뿐, 중간은 없었다고 할 만큼 분명한 존재감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요아킴 팔메를 처음 만났을 때,
난 팔메가 죽음이 아닌 삶으로 알려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팔메의 정책에 초점을 맞춘 책을 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천천히 친해졌어요. 이젠 가족 이야기도 하고 취미 이야기도 하고, 가끔 아버지 이야기도 해줍니다. 정책 이야기 하다 보면 아 그거 My father first introduced... 하며 자랑 많이 해요.
올로프 팔메의 죽음에 대한 여러 의혹은 결국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삶과 닿아있어 죽음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래도 팔메는 죽음이 아닌 삶으로 알려지고 기억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요즘 같은 시대에는 낭만적이기까지 하게 느껴지는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
그리고 우리는 더 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주의
이게 비행기로 13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제게 남긴 팔메의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