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팀목 Dec 31. 2023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는 사실 더 노예가 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사실 그들보다 훨씬 더 노예가 되어 있다.”


쇠사슬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사회, 국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후단에서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사실 더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남을 부리는 자들은 스스로 영원히 주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노예가 없으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가 없기에 결국 자신의 삶을 남에게 의지하는 노예가 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어제 공공기관 개방형 직위공모 면접심사위원으로 참석하면서 갑자기 루소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서류 심사에 통과한 사람이 4명이었고 그중에 3명은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다가 계급정년으로 퇴직한 전직 경찰공무원이었고 한 명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공기관에서 7년가량 근무한 젊은이였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이라 이름과 학교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이와 전공, 경력을 보니 경찰공무원은 모두 경찰대학 출신이었어요.


사실 4명 중에 적합한 사람은 1명뿐이었기 때문에 점수를 부여하는데 1초의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택된 한 사람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고 같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실무도 경험하고 석사학위도 두 개를 취득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습니다. 태도는 겸손했고 그 답변의 내용은 근거를 가지고 구체성이 있었고 솔직했습니다.


2위에 오른 사람은 가장 젊은 민간인이었어요. 물론 직무적합성이 없었고 경력도 미천했지만 직무적합성이 뛰어났고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한 나머지 두 명의 전직 경찰서장보다 좋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3위를 한 분은 스스로 단 한 번도 실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무를 전혀 모른다고 하였고 현재 근무 중인 곳의 임기가 끝나서 지원하게 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4위를 한 분은 평생 정보경찰만 했는데 자신이 아는 정보관이 많으므로 그들을 이용해서 일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3,4위를 한 두 전직 경찰관들은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 짧은 면접시간에 입증해 보이고 말았습니다.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으면서 인터뷰를 준비한 젊은 청년들보다 형편없는 인터뷰 수준을 보였습니다.


왜 그들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이의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지휘하고 사는 것이 주도적인 삶이 아니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을까요?  


왜 그들은 자신이 근무한 시간만큼 더 오랜 시간을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을까요?


분명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동료나 윗사람에게 솔직한 의견을 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거든요. 참으로 안타깝게도 윗사람들은 동료나 부하직원이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옛말에 젊어서 출세하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젊어서 출세하면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아 결국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나 봅니다.


꼰대가 되어 가면서 계급이 높아가면서 솔직한 의견을 듣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설사 그런다고 해도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자신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며 그런 기준은 책으로 역사로 배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알 수록 겸손해진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다만,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와 같이 부패한 체제에서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을 할 기회는 없지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자이자 선비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수사기관의 권력구조를 바로 잡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