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집행자가 똑똑하고 정의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자
홉스, 로크, 루소를 거치면서 사회계약론은 정설이 되었다. 이러한 철학자들의 신념은 시민들이 군주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결국 피의 대가로 시민혁명을 이루었고 그 후 많은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하였고 대한민국도 이를 모방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날 곳을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 불평등을 경험한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스웨덴에서 태어날 수도 있으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대한민국에 사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불평등하게 태어난 노동자의 자식은 불행하게도 성장하면서 더욱 불평등한 처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불평등은 사실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얻게 되는 자연적 불평등과 권력과 자본과 체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불평등이다. 자연적 불평등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극복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계약을 맺었다. 건전한 사회에서는 장애인도 건강한 사람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고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이 당초의 사회계약이었다.
시민들의 건전한 의지인 일반의지는 일부의 통치자에게 지배권을 부여하였고 이러한 지배권은 국가권력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러한 국가권력은 본래 시민을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하여야 하며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이를 억압하는 권력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할 수사권력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시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에 대한 기본권을 모두 박탈할 수 있는 수사권력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정부가 시민과 맺은 계약을 파기할 때가 되었다는 징조이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지 알까?
그들은 그 권력을 시민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을 알까?
그 권력이 통제받지 못한다면 민주 체제가 붕괴된다는 것을 알까?
이 질문 중 하나라도 모른다면 그 수사기관의 구성원은 무지한 것이며, 무지하다는 자체는 자격이 없는데 수사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러한 자들이 수사기관으로 활동하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시민을 위해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참으로 독립이나 중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수사기관의 입에서 중립이나 독립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이나 중립이라는 말은 본디 시민의 입에서 나올 법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수사권력은 늘 중립과 독립의 대상이었지 그 주체가 아니었다.
일단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다. 2022년과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수사기관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은 일단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넘어 그 이전의 한반도에서 수사권력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켰거나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때가 있었을까?
없다. 전혀 없었다.
그래서 갑오개혁 이후 형사사법체제를 프랑스나 독일 것을 들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에 수사권력은 나라를 집어삼키는 데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가장 잔혹했던 경찰의 힘을 빼기 위해 검찰의 힘을 강화시켰고 한반도 전쟁 이후 법집행기관 전부는 대통령 선거를 조작하는데 동원되었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국민을 탄압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은 역시 수사권력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수사권력이 중립적인 적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않은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시켜 달라고 말하는 꼴이 정말 웃기고 하찮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웃기고 혐오스럽다. 군, 경찰, 검찰은 지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시민들로부터 감시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경찰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독립시킨다는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야, 검사야 우리도 같이 먹고살자 너 통해서 뭐 하려니까 티가 안나잖아. 나도 정부나 국회의원한테 다이다이로 붙어먹을 거야"
묻고 싶다. 진정 경찰과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니?
인정하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 정치적으로 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시민들은 그들의 힘을 키워주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시민을 탄압하지 않을 수 있는 일반의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력이 정의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법조인이 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전문가일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시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 착각을 버리고 항상 권력을 의심해야 시민이 당하는 일이 없다.
우리는 모두 개인이며 그 개인은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으며 특히, 권력을 맛을 본 개인은 더욱더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량한 시민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들과 같이 선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좀 더 나은 자리에 있고 좀 더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 선량한 시민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선량한 생각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러나, 잔인하고 악랄하고 비열한 사람들은 그러한 선량한 시민의 기대조차 악용하고 계속 선량한 태도를 보이면 지배자들은 시민을 노예나 개돼지로 취급한다. 이제 선량한 시민들이 좀 분노해야 할 때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저 주변을 둘러 보길 바란다. 과연 시민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을 본 적이 있는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정정당당하게 공교육만을 받는 경우는 얼마 보았는가? 의사나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승진하기 위해 발악하는 자가 주변에 있다면 그 자가 승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은 있는가?
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이상한 편견을 가졌다. 사실, 그 동안 공부 잘하는 놈들 중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놈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두 싸 잡아서 혐오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새치 혀에서 나온 말은 믿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은 널리 강조하고 싶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 항상 나오는 반론이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난 좋은 사람이 지배자가 된 적을 본 적이 없으며 설사 겨우 겨우 지배자가 되었어도 결국은 죽게 되는 것만 보아 왔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지적이지만 경험적으로는 맞는지 모르겠다.)